대학시절 심리학에 빠져 있었다.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면서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동네 작은 도서관의 심리학 책을 대부분 읽었을 때쯤 경영·경제에 대한 책에 빠졌다. 그때 도달한 결론은 ‘생물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이나 생물이 이기적인 게 아니다. 세포 자체가 이기적이다. 그 작은 세포도 살아남기 위해 연합하고 협력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면 거리낌 없이 살상한다. 세포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생물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생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다는 사람은 그 어떤 생물보다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보험업계가 떠들썩하다. 2014년 선지급수수료를 현행 70%에서 60%로 줄이고, 2015년에는 50%로 줄인다는 금융당국의 발표 때문이다. 보험사와 설계사들은 즉시 반발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선지급수수료가 줄면 설계사 중 상당수가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설계사가 이탈하면 보험사의 실적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보험유지율도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다.

선지급수수료란 설계사가 보험을 판매하면, 보험사가 설계사에게 즉시 지급하는 돈이다. 선지급수수료가 높아야 설계사는 더 의욕적으로 모집할 것이며, 더 많은 보험가입자를 모집해야 보험사도 성장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본 기자는 보험사와 설계사 모두 금융당국의 정책에 반발하는 현상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당국은 보험업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려고 하는데, 정작 당사자인 보험업계 스스로 신뢰도를 더 떨어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지급수수료가 높으면 가입만 신경 쓸 뿐 관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반면 선지급수수료가 낮으면 가입은 물론 관리까지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높은 선지급수수료를 원하는 것은 선거 전 국회의원처럼 앞에서는 다 해줄 것처럼 약속하고, 뒤돌아서는 나 몰라라 하는 꼴이다.

실제로 몇몇 고능률 설계사에게 물었다. “선지급수수료가 줄면 영업에 지장이 있나요?” 고능률 설계사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아뇨. 오늘 받든 내일 받든, 그건 상관없어요. 더 많은 고객을 돕기 위한 생활비일 뿐이죠. 그저 어떻게 하면 고객의 입장에서 더 좋은 상품을 권할 수 있을까? 이것만 고민할 뿐입니다.”

종합하면 이렇다. 고능률 설계사, 즉 영업을 잘하는 사람은 이기심을 무척이나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이기심을 알기 때문에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배려하고 돕고 이익을 준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찾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으면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덕분에 연봉이 수억에서 십수억이 될 수 있었다.

보험업계가 힘들다고 한다. 아니 금융업 전체가 힘들다고 한다. 아니 사회 전체가 힘들다고 한다. 해법은 이것이다. 이기심을 이용하는 것. 내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의 이기심, 타 집단의 이기심, 타 국가의 이기심을 이용하는 것.

결국 타인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상품을 만들 것이지.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수익을 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인지. 상대방의 이기심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타인을 위한 고민이 해결책이다.

선지급수수료에 대한 해결책도 자명하다. 무엇이 보험소비자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