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8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악재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특히 형제경영으로 그룹을 유지해 온 박삼구 명예회장 등의 총수 일가는 경영실패 책임을 지고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 전부를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고, 처분권한도 위임키로 했다.

채권단과 금호그룹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금호그룹 계열사 중 대우건설의 모회사인 금호산업과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에 대해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키로 했다.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어 워크아웃이 가결되면, 채권단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출자전환 등으로 채무재조정을 진행한다.

그러나 금호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과 핵심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철저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단과 추가협의를 통해 자체적인 경영정상화를 모색키로 했다.

김영기 산은 수석부행장은 “금호석유와 아시아나항공은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다른 계열사와 달리 상대적으로 영업력 등이 양호하다”며 “회사의 자구노력과 함께 채권단의 적절한 지원조치가 수반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형제간 분쟁을 겪은 금호그룹 총수 일가 중에서 박 명예회장을 제외한 다른 대주주들의 사재출연이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금호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인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사모펀드(PEF)가 주당 1만8000원에 지분 50%+1주를 인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지급여력비율이 떨어진 금호생명 역시 산은이 우선협상대상자인 칸서스자산운용과 공동으로 PEF를 설립해 인수키로 했다.

한편 금호그룹에 대한 금융권의 총 여신은 15조7000억원이며,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직접적인 여신은 3조원 규모로 집계됐다.

금융권의 충당금 추가 적립액은 은행권 1조2000억원 등 총 1조70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그룹 내 잘나가던 사업도 차질 불가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이라는 독배를 마신 덕에 다른 계열사들이 피해를 감수하게 됐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는 최근 영업이익 흑자라는 호재를 만났지만 당장 해외수주가 걱정이다.

금호타이어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A클래스 차량에 납품을 시작하면서 BMW, 재규어·랜드로버 등에 납품 협의를 진행 중이다.

워크아웃 결정으로 이들 업체와의 협상에 치명적인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금호산업은 건설 부문의 부실로 인해 고속 부문의 사업까지도 함께 타격을 받게 돼 경영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호산업 모든 부문이 신규사업을 진행하려 해도 워크아웃으로 인해 일일이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구조로 바뀌게 되면서 고속 부문은 때 아닌 된서리를 맞게 됐다.

임직원 인적 구조조정도 예정돼 있어 직원들의 사기도 문제다. 워크아웃으로 인한 채권단의 인적 구조조정이 당초 그룹 내 명예퇴직이나 임원 수 줄이기 등 자체 구조조정에 비해 훨씬 강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직원들은 술렁이는 분위기다.

연내에 대우건설 매각이 마무리되면서 내년 초 흑자전환을 기대했던 금호타이어 직원들은 12월 월급 지급이 미뤄지면서 워크아웃까지 결정되자 허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금융권도 좌불안석…금호 여신규모 18조원
금융위기를 완전히 탈출한 것으로 생각했던 금융권은 다시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다.
3분기 호실적과 4분기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던 은행권은 금호의 부실 충격에 따른 4분기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으로 인해 당초 기대했던 대규모 흑자 실현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금융권의 전체 여신규모는 총 18조원 정도. 이중 그룹 주거래은행인 산업은행이 4조원 정도를 떠안고 있다.

금호의 일부 계열사 워크아웃으로 은행권은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현재 금감원에서 제시한 은행권의 기업대출금 대손충당금 최저적립률은 고정일 때 여신총액 대비 0.7%, 요주의 7%, 고정 20%, 회수의문 50%, 추정손실 100%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최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감원은 은행권에 충당금 적립 요건을 보수적으로 적용할 것을 주문한 상태다.

금호그룹의 경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대손충당금 산정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워크아웃에 돌입하지 않고 신용등급만 떨어진 금호그룹 계열사의 경우 요주의에 해당하는 충당금만 쌓으면 되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계열사의 경우 고정에 해당하는 20% 이상의 충당금을 적립해야 한다.


박찬구 ‘반격 불씨’ 살리나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 풋백옵션이란 경영실패 책임을 금호석유화학과 타 계열사에 전가하려고 일련의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을 당시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의 주장이다.
재계에서는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금호 2세간 경영권 분쟁 불씨가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박삼구 명예회장의 경영책임론을 거론하며 날선 공격을 감행해 왔던 박찬구 회장이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삼구 회장의 경영책임론에 동생 박찬구 전 회장에게 눈길이 쏠리게 됐다. 박찬구 전 회장은 대한통운 인수를 반대했고,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직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조속히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박삼구 회장의 구조조정 방식에 반기를 든 바 있다.

그룹 지주회사로 지위가 더욱 강화된 금호석유화학을 두고 두 형제는 그동안 지분 경쟁을 벌였다. 박삼구 회장 측은 23.92%로, 박찬구 전 회장 부자(父子)의 지분율 18.47%보다 높은 상황이다.

박삼구 회장은 본인의 지분 5.30%를 모두 담보로 내놓겠다고 공언한 상황이고, 상황에 따라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상무와 조카인 박철완 부장의 지분도 담보로 설정될 수 있다.

이번 채권단 공동관리 결정이 그룹 전체의 지분경쟁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관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룹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까지 들어가는 마당에 경영권 분쟁을 벌이겠냐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채권단에 내놓은 박삼구 명예회장 측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이 처분권까지 위임되긴 했지만 일단 담보로 제공된 이상 경영정상화만 순탄하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채권단 역시 현재로선 박삼구 회장 등 현 경영진을 협상대상으로 해 조속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그 결과에 따른 채권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데 몰두할 전망이다.

문제는 채무재조정 등을 거쳐 금호가 얼마나 빨리 경영정상화를 이루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경영정상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경우에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과 주력 계열사인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됐고,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이 사실상 채권단 관리 아래 경영정상화 절차를 밟게 됐다.

금호석유화학에 대해선 워크아웃이 아니라 자율협약에 따른 구조조정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지분구도상 변화가 당장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채권단 일각에서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워크아웃까지 주장하는 일부 목소리가 살아있다는 점은 박삼구 회장 측에겐 부담이다.

만에 하나 경영정상화 과정이 심각하게 삐걱거리게 될 경우 채권단이 금호석유화학의 박삼구 회장 측 지분에 대한 처분결단을 내리게 된다면,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살아날 수도 있다.

조윤성 기자 co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