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준비하느라 읽어본 장석주의 신저 <인생의 한 수를 두다>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을 재해석하고 있다.

바둑기사들의 금과옥조로 불리는 위기십결은 당 현종의 기대조(棋待詔-바둑전담신하) 왕적신이 만든 것이라는데, 나 같은 바둑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내용이 적지 않다. 아마도 바둑을 통해 전쟁이나 인생이나 사업의 교훈을 얻으려는 오랜 노력들 덕분일 것이다.

이 바둑 10계명 가운데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아마도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사소취대((捨小就大)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말이라고 해서 그 의미가 가볍거나 행하기가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위태로울 때는 버리라는 봉위수기(逢危須棄)는 일단 버림으로써 위태로움에서 피할 수 있으니 결과가 담보되는 것인 반면 사소취대는 작은 것을 버리는 결단이 곧 큰 것의 쟁취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큰 것을 취할 수가 없는 상황이므로 자못 비장하다 하겠다.

의도적으로 작은 패배를 허용해서라도 최후의 승리를 얻고자 하는 전략가들의 궁구(窮究)는 여러 병법서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중국 고대 책략서 36계의 11번째 계책 이대도강(李代桃僵)도 그중 하나로,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적전계(敵戰計)에 포함되는 계략이다.

직역하면, 자두나무(李)가 복숭아나무(桃)를 대신하여 쓰러진다는 것인데, 북송(北宋) 신종 때 곽무천이 편찬한 <악부시집>의 ‘계명(鷄鳴)’이란 시에서 유래됐다.

시에서는 우물가에 복숭아 나무가 자라고 자두나무가 그 옆에서 자랐는데, 벌레가 복숭아 나무 뿌리를 갉아 먹자 자두나무가 대신 죽었다는, 형제간의 우의를 강조하는 비유가 등장한다. 이것이 병법에 응용되어 작은 것을 희생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뜻하게 된 것이다.

유래는 알 길 없으나 사극이나 무술계에서 즐겨 인용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이라는 말도 있다. 제 살을 베어 내주고 적의 뼈를 끊는다는 뜻이니 처절하여 눈에 선하다.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란 구하기 어려운 법이다. 부분적인 희생은 불가피하다. 만약 완승을 꿈꾸며 추호의 희생도 겪지 않겠다는 자세라면 도리어 참패를 면키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찌 전쟁뿐이랴. 무릇 승패가 갈리는 세상사가 모두 그러할 것이다. 경제도 매한가지다.

한국의 경제전쟁 상황을 보자. 한국은행이 10일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낮췄다. IMF와 ADB는 이미 각각 3.7%, 3.5%로 떨어뜨렸다. 내년도 예산안이 3.9% 성장에 맞춰 짜인 것인 만큼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세수부족이 우려될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낙관적이다. 경제는 회복 중이고, 복지예산 규모는 축소한 게 아니라 이행시기를 조정했을 뿐이며, 여하튼 증세는 필요없다고 강조한다. 한국은행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치에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언뜻 보기에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선공약을 철저하게 지키고, 조직의 ‘독립성’을 고수하면서도 침체일로의 경제를 되살릴 묘책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완승이다. 자두나무를 포기하지 않고도 복숭아나무를 잘 키워 보련다며 신념에 찬 형국이니, '소심한' 병법서들은 용도 폐기시켜야 판이다. 그러나 세수부족이 불 보듯 하고 가계부채 SOC투자 축소 등 내부악재뿐 아니라 세계경제도 예상보다 더 악화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 속에서 그런 야심 찬 포부가 가능키나 한 것일까.

물가 안정보다는 고용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는 재닛 옐런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내정한 미국 오바마대통령의 현실인식이 부럽고, 주변국의 욕을 먹더라도 장기 침체된 경제만큼은 살려 내겠다며 드라이브를 거는 일본 아베 내각의 과격함마저 달리 보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