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성격이 강한 미국의 경우 위기가 발생하면 조직은 집단주의 성격을 띤다. 반면 평소 집단주의 성격이 강한 한국은 위기 시 개인적 의사결정에 주로 의지한다. 어느 방식이 항상 옳다 볼 수는 없지만, 위기 시 기업이 좀더 폭넓은 시각과 관점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자명하다.

한국 기업들은 외부 전문가들과의 협업에 그리 길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광고대행사나 로펌 같은 외부 에이전시들을 기업들이 말 그대로 ‘본격’ 활용한지는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사실상 초기 광고대행사나 로펌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클라이언트사의 직간접 관계사인 경우들이 많아 얼마나 외부 전문가들과의 협업에 인색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에는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 에이전시들이나 전문가들과 협업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위기 시에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상황이 후퇴한다. 비밀준수가 핵심인 위기 사안들에 대해 낯선 외부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민감하고 불편한 속내를 외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대신 일부 기업들의 경우 위기가 발생하면 출입기자나 기존 친한 시니어 기자의 의견을 사적으로 청취한다. 지인관계인 법조인들에게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듣는 기업들도 있다. 정치인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규제기관 지인들의 생각도 청취한다.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지인관계를 빌어 해당 위기 상황에 대한 관점들을 리스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포지션과 생각들을 들었으면 됐지, 위기관리 전문가의 의견을 추가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기업들이 있다. 아주 당연한 질문이다. 이해관계자들을 ‘리스닝’하는 것과 이를 기반으로 우리 기업이 취해야 할 포지션과 대응 방식 그리고 메시지를 정하는 ‘전략화 작업’은 또 다른 업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답변이 가능하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렇게 하시라” 조언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단편적인 방향성만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일부 처음부터 이렇게 하시라는 처방전을 들이미는 사람은 위기관리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 전문적 훈련을 받고 일정 수준 이상의 경험을 지닌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은 위기를 맞은 기업에게 ‘A와 B와 C와 D라는 대응 전략 옵션’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전략은 선택에 관한 문제다.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빠짐없이 전략에 담아낸다는 것이 상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종종 회사의 전략이나 위기관리 목표와는 상치되는 것들이기 많아 그 중 선택을 통한 전략화는 꼭 필요하다. 여러 인풋들 중 특정 부분에 중점을 두고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선택’한 옵션이 바로 전략이다. 외부 컨설턴트들은 이러한 이해 속에서 위기 시 클라이언트사에게 ‘쇼핑 리스트’를 제공한다. 클라이언트를 위한 유익한 위기관리 쇼핑 리스트들을 만들어 주는 조언자들이 외부 위기관리 컨설턴트들인 것이다.

물론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직관적 선택이 곧 전략이 되고, 실행에 까지 연결되는 경우들도 있다. 책임 경영 관점에서 이런 방식의 전략화는 그 효율성을 인정 받는다. 하지만, 비오너 기업의 경우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는 항상 ‘합리적이고 전문적 고민’에 의한 의사결정이 전제된다. 전문 경영인들에게 위기 시 위기관리 컨설턴트의 ‘쇼핑 리스트’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기 시 내부에서만 의사결정 할 때와는 다른 시각적 전환이 외부 전문가들에게서 올 수 있다는 점도 큰 가치다. 실제로 해당 기업이 거쳐가야 하는 길을 외부 전문가들에 의견을 받아 두세 정거장을 건너 빨리 이동할 수 있다면 그 만큼 나은 위기관리가 없는 법이다. 보다 경험 있고 전문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중립적 시각을 우리 회사의 가치로 흡수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것도 그들의 ‘쇼핑 리스트’ 속에 들어 있는 옵션이다.

다양한 관점들과 의견들을 충분하게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취합 해 CEO에게 제공할 이상적 쇼핑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이를 하나 하나 검증 하여 선택(쇼핑)하는 것은 해당 기업의 책임이다. 이런 협업과 일사불란함은 평소 외부 전문가들과의 협업과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하다. 위기관리 전략 선택을 위해 중립적인 여러 쇼핑 리스트를 들여다 보느냐, 아니면 단 한 개의 선택에만 의지하느냐 하는 점에는 실제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빨리 외부 전문가들과 친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