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충식(Artist, Kim Chung Sik). “방도리엔 눈이 많이 온다. 나는 비질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눈이 쌓여 아름다운 우주의 작품으로 선보인다. 포근하고 따뜻한 감정을 담아 사물에 덮어놓고 그 부드러운 감동을 전해 줄 때 나는 붓을 든다”고 전했다.

 

낙엽사이 흐르는 선율처럼 가을비가 잔바람에 가벼이 흔들리며 내리던 날 이었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을 지나 경기도 광주시내로 들어갔다. 다시 거기서 자동차로 20여분을 더 달렸을까. 구불구불한 길을 지날 즈음, 커다란 목을 길게 빼고 높은 지대(地帶) 밭둑에 서서 물기 머금은 풋풋한 얼굴로 낯선 이의 모습이 생경(生硬)한 듯 바라보는 꽃이 있었다. 몇 코스모스였다.

 

한국화가 김충식(61) 작가의 화실과 집이 나란히 배치된 가옥은 논밭을 지난 맨 끝 집이었다. 집 2층 거실은 그야말로 바로 뒷산자락이었다. 여름 내내 자란 녹음 우거진 숲은 비 그친 오후시간 어스름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월 부르는 노래, 한지에 수묵담채 45×70㎝, 2002

 

작가는 “산기슭에 집과 작업실을 꾸며 이곳에 들어 온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넘었다. 자연을 가슴에 담아 두고 틈만 나면 산과 들을 사생(寫生)하고 다녔지만 서울생활은 늘 자연에 살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이곳에선 들과 나무와 풀들이 계절을 알려 주고 바람과 공기와 햇빛이 시간의 흐름을 전해준다”라고 했다. 작품 명제(命題)에 자주 등장하는 ‘아름다운 방도리’ 바로 그 마을이다.

 

아름다운 시월, 135×165㎝ 2003

 

코스모스와 설경은 내 기억의 아름다운 승화

 

작가의 고향은 충북 보은군 보은읍 누청리라는 농촌마을이다.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산과 들과 강을 옆에 두고 살았다고 했다. 어려서 그림을 좋아 했으며 방과 후에는 그림을 그렸다.

 

“코스모스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중학교 시절 등하교 길을 코스모스 길로 가꾸는 캠페인 같은 것을 했었다. 이른 아침등교 길, 안개 자욱한 속에서 해맑게 피어난 코스모스가 가벼이 흔들리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그런 때 가을이 왔다. 코스모스는 가을의 전령사였던 것이다.”

 

방도리에서 보낸 연가, 136×176㎝ 2005

 

이러한 아름다운 기억을 코스모스라는 소재를 통해서 나타낸다. 지난 1989년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소재는 조금씩 달라도 코스모스는 꼭 한 두 점 발표했다. “코스모스는 일생(一生)의 소재다. 내 삶을 아름다움으로 승화(昇華)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작가는 설경작품에 대해 “눈(雪)이라는 소재와 한국화의 여백(餘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조형언어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세상 모든 이야기를 덮을 수도 있고 눈이 녹으면서 하나씩 꺼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여백이 전하는 ‘비움’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