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여성부호 집단의 꽃이다. ‘상류층 혼맥의 핵’이라 불릴 만큼 수적인 우세를 나타낸다. 여성부호의 순위를 정할 때면(보유주식평가 기준) 항상 20명 이상 이름이 올라있다.

고 구인회 LG 창업주는 슬하에 자녀 6남4녀를 뒀다. 아들 6형제의 자녀만 20명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직계형제가 6명이었던 만큼 여성부호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다.

그러나 LG 일가의 안주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유교 중심의 가풍이 강한 탓이다. 집안 내부적으로 여성의 ‘경영불가’ 원칙을 철칙으로 삼고 문밖 출입을 허락지 않는다.

여성이라면 내조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LG가 여성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다.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

LG가의 일정한 지분 분배가 가져온 결과라는 평가다. 내조를 통한 기업 경쟁력 상승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밖에서 사업을 하는 것과 똑같은 셈이다.

독특한 가풍, 특별한 분배
LG 총수 일가는 대부분 지분을 일정하게 나눠 갖고 있다. 지분 분배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모호하다. 나이에 연연하는 법도 없다. LG가 여성부호들의 주식평가금액을 합하면 국내 최고 여성부호인 이명희 회장을 능가한다.

LG가 안주인 중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씨다. 5800억원가량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올 초 평가금액이 46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상승세다. 내조를 통한 수익치고는 괜찮은 결과다. 구 회장도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LG전자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것은 내조의 결과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의 동생인 미정 씨의 주식평가 금액은 1530억원가량 된다. 막대한 재산은 남편인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이 있어 가능했지만 LG로 물려받은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외손녀 김선혜 씨(1100억원)와 구본무 회장 장녀 연경 씨(1150억원)도 1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직계가족 외에 부부, 외척 등에게 주식배분을 하고 있는 것도 LG 지분 분배의 특징이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삼녀 자영 씨는 70의 나이지만 700억원을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차녀인 구자혜 씨(470억원)도 72세의 나이다.

60대에 접어든 부호들도 많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장녀 태회 씨는 420억원, 차녀인 혜정 씨는 170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LG의 움직임은 현재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LG가는 미성년 자녀들에 대한 지분 증여를 통한 상속에 앞장서고 있다.

재벌일가 중 미성년 자녀들의 지분평가금액이 가장 높다. 미성년자 중 최고 부호와 최연소 부호 모두 LG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선물’과 같은 의미로 특별한 날에 맞춰 지분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

구본준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딸인 연제 양은 280억원 상당의 LG 주식과 LG상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최연소 억대 미성년자는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딸로 보유주식 평가금액은 125억원 상당이다. LG가는 자녀가 미성년일 때를 시작으로 성인이 될 때 까지 조금씩 증여를 해 지분율을 올리며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재계는 LG가의 여성들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시기가 멀지 않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조기 증여로 인해 증여세 감면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가 안주인들은 모두 재벌가 며느리들의 주 무대인 봉사단체나 문화·예술 분야, 심지어 그룹 행사나 본사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며 “하지만 LG가의 여인들은 주식 순위에 이름을 꾸준히 올리는 등 여전히 대내외에 세를 과시하고 있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시기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LG가 여성들이 경영 일선에 나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LG가의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허완구 회장 부인인 김영자 씨가 승산레저 이사로 부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GS그룹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범LG가에 속해 있던 점을 감안하면 유례없는 일이다. 특히 업계는 구 회장 장녀인 연경 씨도 어떤 식으로든 LG 경영 일선에 참여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연경 씨는 블루런벤처스 윤관 사장과 결혼 후 유학을 떠나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은 또 있다. LG가 타 기업에 비해 여성임원의 등용에 앞장서고 있는 점이다.

특히 올해 인사에서 윤여순 LG경영개발원 교육팀장을 여성 최 전무로 발탁했다. LG는 그동안 여성임원의 수적 확대를 통해 그룹 경쟁력 확보 재고에 활용의 폭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LG가 여성들이 경영 일선에 배치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책임경영·윤리경영 강화
일부 시민단체들은 LG의 지분 분배 움직임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조기증여에 따른 증여세 감면과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보 차원에서 미성년자들을 활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LG는 단호하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LG 관계자는 “책임경영 강화 차원의 움직임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LG는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불황에도 놀라운 매출고를 올렸다. 주력계열사인 LG전자는 지난 3분기 역대 최고 매출인 13조899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총수 일가의 지분 증여 등으로 인해 강화된 책임경영이 빚은 결과라는 게 LG 측 설명이다.

김세형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