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업계의 폭탄으로 떠오른 동양그룹 사태로 시장이 온통 들썩이고 있다.

유동성 문제로 갑자기 불거진 동양그룹 사태가 핵심 계열사들의 잇따른 법정관리 신청으로 그룹 전체가 와해 직전까지 내몰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와중에 동양그룹 회사채 및 CP(기업어음)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은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시장 관계자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상당수는 ‘투자의 모든 책임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며 동양그룹보다는 투자자 자신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는 견해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반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물론 계열사 대표 몇 명이 법정관리 신청을 염두에 두고 회사채 및 CP를 발행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기’라며 동양그룹에 귀책사유를 돌리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결국 투기냐 사기냐로 견해가 양분되는 분위기다.

사전적 의미부터 먼저 짚어보자. ‘투기(投機)’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이며, ‘사기(詐欺)’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이다.

투자자들이 은행이자의 3배에 달하는 회사채나 CP의 투자 조건만 보고, 여기에 현혹돼 충분히 살펴보지도 않은 채 투자에 나선 것은 ‘투기’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는 명확하다. 만약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지 않고 투자자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었다면? 투자자들은 자신의 현명한 판단 덕에 높은 수익을 냈다며 좋아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 투자자가 손해를 본다고 해서 해당기업이 이를 보상해줄 의무는 없다.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는 것이며,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룰이기 때문이다.

다만, 동양그룹이 법정관리 신청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숨긴 채 고의로 회사채와 CP를 판매했다면 ‘사기’에 가깝다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실제로 동양그룹은 상황이 악화된 9월에도 직원들에게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토록 종용했다. 사기는 형법상 목적범에 해당된다. 즉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고의적으로 타인을 속였다면 선량한 투자자에 대한 보상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사기에 해당된다면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실낱같은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지만, 만약 속아서 투자한 것이라면 동양그룹도 투자자에 대한 보상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오너 일가가 자기 지분을 빼내는 등 사익 편취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이번 동양그룹 사태와 관련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난해 한 투자자는 ELW에 투자했다가 1000만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ELW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과거부터 신용거래를 포함한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던 점을 들어 투자상품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과, 가입 당시 1시간 이상 상품에 대한 상담을 했고 자필로 서명한 점을 종합할 때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이번 동양그룹 사태도 회사채나 CP를 판매한 동양증권이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제대로 입증해야 비로소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원금손실 위험이 없다’고 설명했다거나 ‘실제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제시했거나 ‘대리 서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울러 조사결과 동양그룹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 목적이 드러난다면, 즉 사기 혐의가 검증된다면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상받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나름의 상황 때문에 ‘동양그룹 줄타기’에 올라탄 투자자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투기냐 사기냐의 갈림길에서 투자금이 날개를 단 채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