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생인 ‘카프리’는 38번의 실험 끝에 만들어낸 제품이다. 맥주는 주로 자외선 차단을 위해 갈색병에 담겨서 출시되기 마련인데 카프리가 이런 관행을 단번에 깼다. 기술 개발을 통해 처음으로 투명한 병에 담은 맥주를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2011년에 태어난 ‘오비골든라거’는 목표를 프리미엄으로 정해 최고의 맥주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고급화를 통해 재료에도 더욱 신경을 썼던 이 맥주는 출시 이후 단기간에 1억 병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오비맥주 공장에서 만난 정영식 브루마스터(이사)는 자신이 참여했던 개발 제품 중에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로 카프리와 오비골든라거를 꼽았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1984년 오비맥주에 입사한 이후 이천공장 양조과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그 후 본사 생산관리팀, 연구소, 서울공장 양조팀을 거치면서 1996년 미국의 전문 양조기술양성자과정인 시벨 테크놀로지 인스티튜트(Siebel Technology Institute)에서 디플로마(Diploma) 과정을 이수했다.

“디플로마 과정은 주로 맥주 회사에서의 근무 이력이 있으면서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배우는 곳입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양조 과정을 단기간에 습득하는 것이죠. 교육내용은 물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발효와 효모는 어떻게 하는지, 효소는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등에서부터 포장 기술까지 전체적인 맥주제조 과정을 배웁니다.”

정 이사는 1999년에는 국세청에서 실시하는 주조사 시험에 합격, 주조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에도 연구소에서 제품개발, QA, 구미공장, 광주공장 등에서 양조팀, QA팀장으로서 맥주를 개발·생산하고, 품질관리를 하는 일들을 수행해왔다.

그는 “식품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며 “꼭 자격증을 미리 취득할 필요는 없지만 품질경영기사는 어느 산업에서 일하든지 품질을 판단하는 데 배경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유용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양조기술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품질보증은 품질관리 체계를 만들고 각 공장이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점검·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아울러 품질관리에 대한 표준을 만들어주죠. 이어 기술개발 부분에서는 상품과 포장지를 개발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포장에서는 담는 기술이 핵심입니다. 맥주는 발효가 끝난 후 산소와 접하면 산화되면서 맛이 변질되는데요. 산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최대한 줄여야 하고 자외선 차단은 물론 사람들이 뜯기 좋게 하는 기술까지 갖춰야 합니다.”

정 이사의 맥주론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에 따르면 맥주는 효모를 맥주통 위아래 중 어디에서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에일(ale)과 라거(lager)로 나뉜다. 맥주통 위에서 섭씨 18∼25도로 발효시킨 것이 에일 맥주로, 제조 기간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로 짧다. 맛은 거칠고 향이 강한 편이며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이 묵직하다.

라거 맥주는 청량감 있고 가볍게 톡 쏘는 맛이 특징으로, 저온에서 오랜 기간 숙성해 일정한 향을 내며 세계 맥주 소비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제조 기간은 보통 3주~한 달 정도다.

“예를 들어 포도주의 경우 제철에 나는 과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맛으로 대량생산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매년 생산되는 곡물도 해마다 품질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관과 대형화가 가능하고, 각 브랜드 고유의 맛을 일정하게 낼 수 있기 때문에 맥주는 술 중에서 가장 과학화된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맥주 생산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정 이사는 “1950년에 흑맥주를 내놨지만 수요가 일정물량 이상을 받쳐주지 못해 단종됐다”며 “어느 정도 수요가 있어야 공장도 가동되는데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 되니 다양화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특이한 맥주 개발을 계속 시도할 예정”이라며 “올해 묵직하고 차분한 맛이 특징인 에일 맥주를 시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브루마스터는 일종의 식품을 만드는 직업이다. 주류산업 중에서 특히 맥주는 가장 산업 발달이 잘된 분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관련학과가 있고 학회도 매우 활성화돼 있어 연구활동이 많다. 정 이사는 “글로벌 기업이 많을 뿐 아니라 기술도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으며, 배울 것이 많다는 게 맥주 업계의 장점”이라며 “주류산업 특성상 경쟁이 심하지만 시장이 급변하지는 않는 특성이 있고, 맥주를 즐길 줄 안다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맥주를 체험하고 내 손으로 직접 개발했을 때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맥주 제조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정 이사는 ‘사람이 먹는 먹거리를 만드는 것’을 꼽았다. 그는 “내 부모, 친척에게 권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원료 선택에 신중해야 하며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회사잖아요. 매우 보수적이죠. 까다로운 품질관리를 해야 하고 전자회사나 첨단산업과 달리 신제품 주기도 길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기도 힘들어요. 주류 특성상 법적인 규제도 많고, 관련된 정부기관도 많아 복잡한 편이죠. 건강과 직결돼 있고 남용 시 문제가 심각하므로 소비자단체,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성향의 학생들이 브루마스터로 진출하면 잘 해낼 수 있을까. 맥주는 발효주다. 그만큼 맥주산업은 식품산업과 주류산업 중에서도 산업화된 사업 분야로 공부해야 할 것이 매우 많다. 또한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글로벌 산업으로 국제적인 언어에도 능통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에 건전한 음주를 통해 사회를 진보시키고 건강한 주류를 제공하며 맥주를 즐길 줄 알고 도전적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인재들에게는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게 정 이사의 설명이다.

“모든 맥주 관련 자료들이 영어로 돼 있으며 외국 기술전문가들과 교류하고 함께 나누려면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식품의 기초 이론을 학습하면 업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또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지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적이고 도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르마스터에 도전해보세요.”

마지막으로 정 이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내가 일하는 자리와 업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도전, 내가 먹고 친구와 형제들이 먹는 맥주를 최고로 안전하게 좋은 품질로 만들고자 하는 정직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정영식 브루마스터의 Knowhow

맥주 제조기술에 관한 내용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오며 학회 역시 마찬가지다. 학회 사람들과 대화하고 영어로 나온 새로운 기술이나 논문을 알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다. 영어가 서투르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정 이사의 설명이다.

“해외 바이어들과 워크숍도 해야 하고, 맥주 맛은 대부분 영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양조업계에서만 쓰는 언어가 있는데, 특히 독일에서 유래된 용어가 많은 편입니다. 저의 경우 입사 후부터 영어 공부에 매진해 왔고, 샌프란시스코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죠. 영어에 자주 노출시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