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그후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COO, 현대자동차 최연소 대표이사 사장,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고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초빙연구원으로 활동하고 돌아와 최근 ‘2.1연구소’를 설립했다.


“젊은이들이 취직을 하더라도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서울시내에서 집을 얻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기대수명이 80을 넘긴 시점에서
불안한 노년을 맞이하는 것도
큰 문제다. 결국 이 같은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요인들로 작용하고 있다.”

1.22명.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수치다. 세계 평균인 2.5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저 수준.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국내 인구가 4410만명까지 줄어들 것이란 예측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은 인구감소가 몰고 올 파장을 쉽게 보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경제 인구가 줄어드는 대신 고령화 비율은 늘어 경제성장률과 저축률이 동시에 하락하는 것이 가장 먼저 드러나게 될 문제. 이 때문에 사회보장과 조세부담이 증가하게 되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2.1연구소’가 설립됐다. 1.2명의 합계출산율을 2.1명으로 뒤바꾸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 연구소는 이사장이 이계안 전 의원, 연구소장이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특히 현대차 최연소 사장을 지내기도 했던 이 전 의원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유학에서 돌아온 후 시작한 공식활동이란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직접 연구소까지 세울 정도로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다.
단순히 저출산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결혼이나 출산을 용감한 일이거나 무책임한 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지 않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로 저출산 극복을 본 것이다.

산업, 혹은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저출산은 심각한 문제다. 기업인 시절부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인가.
현대차 사장 시절 일이다. 기아차 인수 직후 해외에 현지 공장을 짓기 위해 유럽을 탐방한 적이 있다. 당시 가장 적합한 곳으로 스페인이 거론됐다.

인건비가 비교적 낮으면서도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컨설턴트에 의뢰한 결과 적합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페인은 당시 출산율이 1.0명 수준이었다. 장기적으로 노동력 수급이 문제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출산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게 됐다.

우석훈 박사가 연구소장이다. 현대그룹 시절 연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후로도 계속 알고 지냈나. 특히 저출산 극복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나.
우석훈 박사가 먼저 연구소장을 하겠다 한 것은 나로서도 의외였다.

미국 유학할 때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나누긴 했지만 만나 얘기를 해보니 뜻이 더 잘 통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이메일로 칼 폴라니의 책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정력적으로 집필활동을 하며 젊은이들과의 소통 통로를 갖고 있는 우 박사가 연구소장을 맡아준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아직 연구소의 규모는 크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연구가 진행되며 조직을 어떻게 꾸려나갈 생각인가.
연구 인력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운영방식을 참고할 생각이다.

포드나 GM 같은 회사가 극단적 수직계열 조직을 꾸려 본사에서는 조립만 하면 됐듯이, 우리도 각 분야의 연구 인력들이 보고하는 연구 결과를 종합해 분석하는 인테그레이터(Integrator)의 역할을 주로 하게 될 것이다.

최근 서울시를 직접 걸어다니며 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특별한 목적이 있나.
고 정주영 전 회장은 내게 멘토에 해당하는 분이다.

기업인 시절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가 남긴 말 중에 “현장에 신의 음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을 찾는 일이다.

현장을 돌며 어떤 얘기를 듣고, 어떤 것을 느꼈나.
돌아다녀 보면 서울시에는 공원이나 놀이터와 같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얼마 안 되는 그런 공간에서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놀 시간에 모두 학원에 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입시 위주의 교육에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누가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인가?》라는 책도 썼다. 그 책에는 한국 사회의 4대 지옥으로 지금 언급한 교육 문제 외에도 청년실업 문제, 내집 마련 스트레스, 불안한 노년 등을 거론했다.
최근 창업동아리를 꾸려가고 있는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내심 요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일지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취적인 창업을 꿈꾸기보다는 면접에 스펙 한 줄 더 넣기 위해 창업동아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취직을 하더라도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서울시내에서 집을 얻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기대수명이 80을 넘긴 시점에서 불안한 노년을 맞이하는 것도 큰 문제다. 결국 이 같은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요인들로 작용하고 있다.

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 문화 확산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동기가 선하지 않으면 기부를 해도 크게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일단 기부에 대해선 박수를 치고, 그 자금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고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식 기부문화의 정착을 뜻하는 것인가.
그렇다. 빌 게이츠와 두 번 정도 만났는데 그의 말에 크게 공감했었다.

경쟁할 때는 이기기 위해서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혁신도 일어난다.

하지만 이기고 난 후에는 진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그것이 빌 게이츠가 말하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공감한다.

앞으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어떤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책에서 언급한 교육, 취업, 내집 마련, 노후 대비 등에 대해서 총괄적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2.1국가’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연구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 CEO 출신으로서 한국 기업들이 극복해야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내 대기업의 문제는 지나친 독점적 지위에 있다. 노력 안 해도 팔리니까 국내 고객들을 오히려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생겼다.

현대차 시절 계열사 감사를 나간 적이 있다. 당시 현대전자에는 여직원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었는데, 다른 계열사인 현대리바트에서 가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리바트는 시장에서 팔지 못하는 제품들을 수리해서 공급하고 있었다.

그런 가구를 제공해 주면 현대전자 여직원들이 나중에라도 현대리바트 가구를 사거나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일이 있을까. 이는 잠재시장을 죽이는 꼴이다. 대기업들의 지나친 독점적 지위를 시스템적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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