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책 읽어주는 남자>

온(溫)-라인 메일의 감동

《눈꽃 편지》
김하인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2002년

발문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바로 온(溫)라인이라. 정작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내용을 담아서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지요.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읽고서 대충 던져놓았던 책들입니다. 그렇게 쌓여 있던 책들은 주기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어지고, 관리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책장을 정리하는 일은 때론 큰 일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단하게 끝이 납니다. 이번엔 조금 큰 일이 되었습니다. 게으른 일상이 일을 크게 만든 것이지요.
나름의 방식으로 책장을 정리하던 중 한 책에 꽂혀 있던 편지를 보았습니다. 한 여인으로부터 받은 연서였습니다. 예쁜 편지지 위에 펜으로 곱게 적은 글들이 풍성한 추억을 가득 담고 있더군요. 기억 저 너머로부터 시간을 건너서 추억은 지금, 내 서재로 다가옵니다.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누군가로부터 그리움의 편지를 받는 그런 경험. 그 편지를 곱게 추억 속에 묻어놓았다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경험. 꼭꼭 숨겨두었던 보물을 찾은 듯한 그런 경험.
요즘에야 종이에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요. 저도 이메일보다는 종이편지를 선호하지만 막상 제가 쓸 때는 이메일을 쓴답니다. 그래도 이메일보다는 종이편지가 더 정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편지가 번거롭긴 하지만 막상 받을 때를 고려하면 감동이 더 클 것 같기 때문이죠.
어느 모임에서 친구들과 편지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한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종이편지가 더 감동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하지만 난 그것도 하나의 편견이라 생각해.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무엇인지 알아? 어느 책에선가 본 글인데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바로 온(溫)라인이라더군. 종이에 써서 보내느냐, 이메일로 보내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 중요한 건 편지에 담는 내용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닐까?”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바로 온(溫)라인이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정작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내용을 담아서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지요.
신달자 시인의 〈겨울 초대장〉이란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을 초대한다. 겨울 아침에……
오늘은 눈이 내릴지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오늘 온(溫)라인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내보심은 어떨는지. 이메일로 그 누군가를 초대해 보심은 어떨는지. 그렇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보심은 어떨는지.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겨울, 나뭇가지뿐인 나무와 유리창 성에꽃으로 펜과 종이 삼아 씁니다. 어느 곳에 당신이 사는가를 모르는 전 창백한 내 마음에다 상처의 무늬를 쓰고 읽습니다. 요즘 환한 불면입니다. 다시… 당신을 만나 당신과 꺼진 전등 속에 들어가 잠 잘 수 있다면. 당신을 더욱더 편안하고 따스하게 맞을 텐데. 전 당신 가슴속으로 눕고 당신은 제 마음속에 누워 햇빛 날리는 창문을 이 삶으로부터 선물 받을 수 있을 텐데… 지금 내다본 나 이외의 세계는 다 어둡지만 전 당신만으로 밝습니다. 슬픔이 이토록 무한 동력으로 발열하는지 그저 불면마저 신기해할 뿐입니다.”-《눈꽃 편지》 13쪽

이현(이현)
- 지식/정보 디자이너
- 오딕&어소시에이츠 대표
- rheeyhyun@gmail.com

강혁 기자 kh@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