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를 기억하는 첫 번째 장면은 일명 ‘이미숙 스캔들’이다. 요는, 작가 최인호와 배우 이미숙이 좋아 지내다가 급기야 홍콩까지 가서 밀애를 나눴더라는 이야기. 1986년 8월, 신문과 잡지는 모두 이 스캔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매스컴의 폭로에 대한 작가 최인호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이미 끝난 일이다. 집사람에게도 다 털어놨다.”

뭐야, 그러니까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거네. 당시 여드름쟁이 고교생이던 내 눈이 번쩍 뜨인 것은 불문가지다. 이미숙이라니, <겨울나그네>의 고 예쁜 이미숙하고 찐하게 연애를 했다니 작가라는 직업이 참 괜찮구나, 싶었다. 어처구니없지만, 글을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벼락 치듯이 머리를 때렸다. 마릴린 먼로와 결혼했던 극작가 아서 밀러와 더불어, 최인호 스캔들은 나를 기꺼이 ‘문청’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만약에 최인호가 이미숙과 내처 결혼까지 감행했더라면(그 아내분께는 죄송한 말씀이나), 긁어모아 봐야 한 움큼일망정 나의 문재(文才)가 폭발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나의 문학수업이 시들시들하게 고사해버린 것은, 이 방면으로는 도무지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한 한국작가들 탓이다.

하지만 독자로서 최인호와 나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고등학생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해 거의 한평생을 현역 작가로 끊임없이 히트작을 쏟아내며 왕성히 활동하기는 했으나, 콕 꼬집어 말해 최인호의 시대는 70년대였고 그는 70년대 감수성의 지배자였다. 내가 왕성한 문화소비자가 되어, 물정 모르는 배추벌레처럼 밤이고 낮이고 책을 먹어치우던 시절에 만난 그는 이미 낡아져 있었다. <별들의 고향>이 보여주는 경아의 비극은 너무 수동적이고 신파조라 공감이 안 됐고, <겨울나그네> 같은 청춘소설들을 읽다 보면 영락없이 이덕화와 임예진이 나왔던 ‘진짜 진짜’ 시리즈의 성우 말투가 머릿속에 자동 재생돼 촌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데는 애초에 그런 독소가 포함돼 있다.

그를 대신해 우리 세대의 작가로 떠오른 것이 <장길산>의 황석영이고, <젊은 날의 초상>의 이문열이다. 과거의 걸작들을 탐독하며 사숙하는 문청들도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조세희의 <난·쏘·공>을 읽을망정 최인호를 손에 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도 최인호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문열이 48년생으로 45년생인 최인호보다 불과 세 살 아래고, 황석영은 43년생으로 최인호보다 되레 두 살 위다. 거의 동년배로 봐도 무방한 나이 차인데,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문학적 나이’는 이렇게 다르다. 그러고 보면 작가에게는 출생일보다 출고일(등단연도)이 중요하고, 자기랑 코드가 맞는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게 더 중요하다. 이 점은 80년대를 장악했던, 문단 최고의 스타 이문열이 이후에 얼마나 철저하게(또는 처절하게) 외면당했는지를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최인호는 시쳇말로 ‘운대’가 잘 맞았다. 그가 활약하던 시절에 문학은 문화의 핵심이었고, 모든 트렌드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최인호에게 언론이 붙여주었던 별명인 ‘청년문화의 기수(이를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괴수’라고 부르기도 했지만)’는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진실, 그 자체였다. 그가 한 일을 보라. 천재 감독 하길종과 영화를 만들고, 가객 송창식에게 노랫말을 써주었으며, 한 여배우의 전성기를 핑크빛 스캔들로 물들였다. 이만한 대중적인 파급력을 가진 작가의 예를 한국 문단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돈도 많이 벌었다. 작가로서는 드물게 일찍 골프를 시작했고, 시가를 즐겨 태웠으며, 외제차 브랜드의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4대 문학상을 석권해봐야 그저 작업실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오늘날의 작가들로서는 꿈도 못 꿀 얘기들이다. 물론 그가 거둔 성과를 모두 운에 돌리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빛나는 재능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최인호의 전성기는 작가가 오로지 책을 팔아서 부와 명예, 인기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던 우리 문화사에 희귀한 시대, 말하자면 한국문학의 ‘벨 에포크(Bell Epoque)’가 아니었을까.

끝으로 최인호를 생각하면, 기억에서 늘 끌려 나오는 일화 한 가지. 학창시절의 최인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데다가, 키도 작고 성적도 그냥저냥이라서 그리 존재감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짓궂은 학생들은 그를 만만히 보고 놀렸는데, 이런 아이들을 향해 그가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너희는 지금 나를 놀리지만, 나중에는 나와 같이 학교에 다녔다는 것을 평생 얘기하게 될 거다.” 그는 정말로 그런 인생을 살았다. 참 잘난 사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