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대신 화장솜 주고‘여성 전담팀’도 구성

볼보 XC90 차량의 내부 모습. 자녀를 태운 여성 운전자들을 위해 뒷자석을 운전석 쪽으로 당길 수 있도록 했다.


미자동차 산업의 아버지 ‘포드’는 자동차 대중 시장을 연 일등공신이다. 검은색 모델인 티카(T-Car)를 파격적인 가격대에 대량생산하며 주머니가 가벼운 근로자들의 ‘오너 드라이버 시대’를 세계 최초로 연 주역이다. 포드는 그러나 자동차를 여성들이 이용하는 때가 올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다.

전통적인 금녀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자동차 부문에도 변화의 바람은 거세다. 국내외 자동차사들은 여심 공략의 진기명기들을 펼치며 시장 확대에 부심하고 있다.

여성 운전자들이 급증하면서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한 편의시설도 하나둘씩 늘리는 추세이다.

올해 5월, 인천 청라에 위치한 GM대우의 주행시험장에 60여명의 여사원들이 모였다. 그녀들이 주행시험장에 모인 이유는 바로 자사의 전 차종 시승행사를 위해서다.

여사원들은 자사의 모든 차량을 직접 시승한 후 외관과 인테리어, 주행 및 엔진 성능 등에 대한 제품 평가를 한다.

급증하고 있는 여성 운전자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은 역시 여성 본인들이라는 생각해서 고안한 행사다. 행사의 주최는 GM대우 여성위원회.

직장 내 성평등 증진과 여성인력 개발 등을 위해 2005년 발족된 GM대우 여성위원회는 해가 지날수록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도 여성고객으로서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브랜드 매니저와 마케팅담당직원 등이 참여하는 ‘Maketing To Women’이라는 모임도 조직했다. 볼보자동차는 수년 전 아예 여성 전용 콘셉트카(YCC)를 선보였다.

기획단계부터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키가 작고 근육량도 적다.

또한 자녀들을 동반해 운전하거나 쇼핑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많다. 차를 구매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에 있어서도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크다.

여성들이 차를 볼 때 가장 처음 보는 것은 무엇일까. 남자들처럼 엔진 종류나 마력수, 기통이나 배기량은 아닐 것이다.

여성들은 차의 색깔과 디자인, 실내 느낌이 어떤지, 문은 얼마나 쉽게 열리고 닫히는지, 물건을 얼마나 실을 수 있는지 같은 것을 먼저 본다. 여기에 이 차에 탔을 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상상도 추가된다.

때문에 여성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지 않은 채 여성 운전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하기는 어렵다. 이에 볼보자동차는 여성 고객 참조인 그룹인 FCRG를 이미 20년 전에 조직했다. FCRG는 8명의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에는 하이힐을 벗어놓을 수 있는 시트언더트레이를 포함해 수납공간만 27가지에 달한다.

“볼보 XC90은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을 위한
페달도 특별 제작했다.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운전석에 오르기 쉽도록 중간 계단을
장착하는 배려도 엿보인다.
자동차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이제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수납공간은 늘리고, 여성 위한 페달은 특별 제작
이러한 여성 사원들의 의견이 모아져 제품 자체도 점점 여성친화적으로 변모되고 있다. 특히 여성 고객들이 많이 찾는 소형차를 보면 여성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티즈 클래식과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다양한 수납공간이 눈에 띈다. 화장품 및 다양한 액세서리를 들고 다니는 여성 운전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이다.

하이힐을 벗어놓을 수 있는 시트 언더 트레이와 컵 홀더, 글로브 박스, 2개의 다용도 박스, 선글라스 홀더 등 수납공간만 27가지에 달한다.

젠트라에는 손톱이 긴 여성들을 위해 크롬 풀아웃 타입의 도어핸들이 적용됐다. 차량 외부 손잡이가 위아래 아무 데서나 잡아당겨 열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손톱이 긴 여성들이 문을 열다 손톱이 부러지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게 고안된 것이다.

볼보의 XC90은 6개월간 여성들로 이뤄진 심층 면접단을 운영하면서 설계에서부터 각종 편의시설, 제조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돼 완성됐다.

그야말로 여성들의 위한 SUV인 셈. 이 차량은 자녀를 태운 여성 운전자들을 위해 뒷자석을 운전석 쪽으로 당길 수 있도록 했다.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을 위해선 페달을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또한 치마를 입는 여성들이 운전석에 오르기 쉽도록 중간 계단을 장착하는 배려도 했다.

출시하자마자 올해의 차로 선정됐던 XC90은 자동차 업계에서 여심을 잡으면 성공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볼보의 여성 운전자 배려는 YCC라 불리는 콘셉트카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 콘셉트카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140명의 제작팀 가운데 100여명을 여성으로 채웠고, 설계와 기획도안, 제조에 이르기까지 여성적 관점을 최대한 반영했다.

이를 위해 볼보는 여성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 차량은 일렬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해 운전석에서 볼 수 있는 차체에 대한 시각범위를 넓혔다.

‘주차도움’ 버튼을 누르면 일렬 주차공간이 넉넉한지를 알 수 있고, 다시 이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가 핸들을 돌리는 폭을 도와 완벽한 주차가 가능하도록 했다.

높은 굽을 신거나 긴 드레스를 입었을 때 타고 내리는 불편도 확실히 줄였다. 문이 위로 열리는 날개식이어서 굽이 문턱에 걸리거나 드레스에 더러움이 묻을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실내 인테리어 또한 거실가구에서 볼 수 있는 재료와 색을 이용해 아늑함을 강조했다. 여성 운전자들의 또 다른 고민인 차량점검은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여성소비자 그룹’이 해결해 준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주부들을 위해 개발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상품 ‘프리미안’.


성형수술 비용도 지원되는 보험 휴지 대신 화장솜 주는 주유소
여성 운전자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차량점검이다. 도로 한복판에서 차량에 문제라도 생기면 대부분의 여성 운전자들은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하기 일쑤.

이러한 여성들을 위해 보험업계에서도 여성용 보험상품 개발에 나섰다. 최근 출시된 삼성화재의 애니카레이디 보험이 대표적 사례.

이 상품에 가입하면 여성 운전자가 원하는 장소에 직원이 방문해 차량을 인도받아 진단을 마치고 다시 고객에게 배송까지 해주는 차량진단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전화 한 통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 운전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사고 발생시에도 여심을 잡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사고로 상해를 입어 보험금이 지급되는 경우 여성 운전자에게 쾌유기원 상품이 주어진다.

쾌유기원 상품은 여성용 차(茶)와 텀블러, 손톱정리 세트, 꾸러미 바구니 등 화려하진 않지만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로 구성돼 있다.

사고로 인해 신체적 상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성형수술 비용과 치아보철 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성형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1cm당 10만원, 치아는 대당 20만원이 추가 지원된다.

방배동에는 여성친화적 주유소도 등장했다. 여성 운전자가 주유소에 진입하면 한 주유원이 워셔액을 갈아주고, 다른 주유원은 타이어의 공기압을 충전해 준다.

주유를 마치고 나갈 때에도 대로변에 편안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주유원이 나와서 출차 유도를 해준다.

SK에너지가 지난해 11월에 오픈한 여성친화 주유소 ‘엔느’에서의 풍경이다. 엔느주유소에서는 여성 운전고객을 위해 주유원들이 무릎을 꿇고 고객을 응대한다. 고객과의 눈높이를 맞춰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기 위함이다.

또한, 사은품도 기존 휴지가 아닌 화장솜 등 여성을 위한 것으로 전달하는 한편, 주유 후에는 차도 진입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출차 유도 서비스를 지원한다. 엔느주유소를 이용하는 여성 고객 비율은 전체 주유고객의 40%에 달한다.

여성들, 특히 주부들이 자동차만큼이나 친해지기 어려운 것이 바로 컴퓨터. 최근에는 컴퓨터 활용에 능숙하지 않은 주부들을 위한 초고속인터넷 상품도 출시됐다.

황신혜를 모델로 내세워 일명 ‘황신혜 인터넷’이라 불리는 LG파워콤의 프리미안이 그것.

이 상품에 가입하면 단순히 인터넷 서비스만 받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프리미안 매니저들로부터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 코칭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계부 만드는 법, 블로그 꾸미는 법과 같은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자녀를 둔 주부들을 위해서는 자녀의 수행학습 지도를 위해 가족 신문 만드는 법이나 현장 학습 보고서 만드는 법도 알려줘 인기가 높다.

깐깐한 주부들을 주로 상대하게 되는 프리미안 매니저들은 항공사 승무원급의 친절함을 몸에 익힌다.

프리미안 매니저 교육 과정에 비서학이 포함된 것도 이 때문. 실제로 이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 대상 서비스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전수받기도 했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