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수입금지 조치? 그럼 뭐하노. 애먼 국산도 덩달아 안 팔리고 있는데...”

30여 년째 생선 장사를 해온 김 모 할머니(68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서울 도곡시장의 김 할머니 어물전은 국산 고등어, 갈치 등을 주로 취급한다. 원전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 수산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최근 몇 주간 단골손님들마저 뚝 끊겼다. 썰렁하기는 인근 횟집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산 수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팔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방사능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밀려 와 우리나라 바다도 오염될 수 있다는 루머 때문이다.

시장에서 만난 주부 조 모 씨(43세)는 “아이들이 생선을 좋아하지만 당분간은 식탁에 생선 반찬을 올리지 않을 생각”이라면서 “남편도 불안감에 횟집 가기를 꺼려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될 만한 일본 수산물 수입만 차단하면 국산 수산물을 중심으로 소비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라던 정부 당국의 판단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이 같은 국산 수산물 기피현상은 재래시장뿐 아니라 대형 마트에서도 나타난다. 롯데마트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8월 수산물 매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감소했다. 특히 대표 인기생선인 고등어가 30.6%, 갈치가 11.8%, 명태는 무려 66.3%나 감소했다.

그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외국산 수산물에 돌아가고 있다. 일본 바다와 멀리 떨어진 노르웨이산 고등어와 연어, 에콰도르-페루의 새우, 미국-캐나다산 로브스터, 세네갈 갈치 등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올해 수입 수산물 매출 비중이 전체 중 40%에 육박해 5년 새 두 배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이 수수방관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6일 후쿠시마 등 일본 내 8개 현의 수산물 50개가 수입 금지됐다. 그 외 지역의 수산물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미량이라도 검출될 경우 추가 검사증명서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국무총리실 등 정부부처와 17개 시도는 합동 불량식품근절추진단을 꾸려 일본산 수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팔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본산 식품 검사 현황을 매일 공개하고 방사능이 발견된 제품은 식약처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국내산 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 기준도 강화했다.

문제는 정부의 대처가 오직 일본산의 수입금지와 위장판매 근절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  국산 수산물의 안정성을 알리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이다. 특히 수산물을 방사능측정기로 검사하는 장면이나 방사능에 오염된 기형 물고기의 모습 등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덩달아 국산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 측면이 크다.

전문가들은 먹거리 파동의 경우 소비자들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조류독감, 돼지 인플루엔자(SI), 광우병 파동 등에서 드러났듯이 먹거리는 대체재가 많은 데다가 구매 시 가족건강 같은 심리적 요인까지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입금지나 방역 등 공식조치와 함께 사회심리적 원인을 찾아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3년 조류독감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을 초청해 닭볶음과 오리구이로 만찬을 했다. 그 장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직후 국민의 불안감이 상당히 해소되면서  닭고기나 오리고기의 소비가 되살아났다.

물론 얼마 전 식약처장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시식회를 열긴 했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이 때문에 수산업계에서는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과거의 파동들 때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과 지자체장, 정치인들이 국민의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 적극 나서 달라는 것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한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당시 사전예고가 없었는데도 박 대통령의 방문에 재래시장에는 500여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언론 반응도 뜨거웠다. 만약 이때 박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국산 생선회나 매운탕을 직접 시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이성적인 행정조치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민의 놀란 가슴을 달래는 감성적인 ‘쇼’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