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의 사모펀드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더욱 안개속을 걷고 있는 대우건설. 노조측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산업은행이 사모펀드를 구성하고직원들이 결성한 우리사주조합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금호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1관 대우건설 노조에서 만난 장 과장이 최근 매각에 관련해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건설회사로 키워놓고 고스란히 남 주면 말이 되느냐. 국내 기업이 여력이 없다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인수해야 한다.”

대우건설의 매각 작업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이다. 노조는 하루가 멀다하고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와 ‘먹튀’ 자본에 국내 건설업계 리더로 자리 잡은 대우건설을 팔아넘기면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직원들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명함을 손에 쥔 지 불과 2년도 안 되어서 또다시 어디로 팔려갈지 모른다는 불안심리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대우건설에 입사한 13년차 과장은 최근 대우건설 매각 상황에 대해 “속상하다, 어이없다”고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

올 상반기까지 3년 연속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1위 자리를 군림하며 건설사 최고의 영광을 차지한 대우건설. 암담한 현실속에서 대우건설이 처한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위태하다.

밤낮 없이 뛰어 최고 만들어놨더니 결국…
“대한민국에 경제정의가 있습니까.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구이지요. 도대체 열심히 일한 직원들만 무슨 죄가 있는지….”

입사 13년차. 장재경 대우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사업2팀 과장은 이번 매각이 억울하기만 하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바로 직전인 1997년에 입사한 그. 당시 잘나가던 대우그룹 공채로 당당히 입사한 장 과장이었지만 영광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외환위기가 닥치고 그룹해체, 워크아웃이라는 시련이 그의 꿈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있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시선을 차치하더라도 당장 들어오는 일감이 없다 보니 공사를 만들어서 사업을 진행해야 할 판이었다.

타 건설사들은 자본잠식에 들어간 회사 아파트를 사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악의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장 과장은 당시 밤낮 없이 현장을 뛰어다녔다고 한다.

대우건설 직원이라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또다시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었다. 신사업이라면 닥치는 대로 뛰어들었다.

주거용 오피스텔시장을 시작으로 임대투자상품도 새롭게 선보였다. 트럼프월드 브랜드로 최고급 주상복합시장에도 대우건설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회사가 어려웠지만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대우건설기술연구소를 주축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할 만한 기술력을 축적해 나아갔다.

업계유일의 침매터널 공사로 짓고 있는 거가대교부터 시화호 조력발전소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대우건설이 아니면 불가능한 사업들이다.

직원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 외환위기 한파를 맞고 고전을 면치 못하던 대우건설이 시공능력 평가 1위를 달성한 때가 바로 이때.

정부에서도 대우건설이 업계 최고라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뒤로도 3년간 대우건설은 수위 자리를 고수하며 건설명가의 부활을 알린다.

그 사이에 국민들 혈세도 몇 배로 되갚았다. 캠코가 9000억원을 들여 회사를 살리고 금호에 6조원을 받고 팔았으니 최소한 국민돈을 빨아먹은 부도덕한 기업이란 소리는 덜 듣게 된 셈.

해외 투기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대우건설 직장 분위기도 사뭇 달라지고 있다. 직원들의 노조 집회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파업을 해야 한다"라는 강경한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금호아시나빌딩 1관에서 대우건설 노조원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빈껍데기 회사될까 걱정
장 과장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회사를 살리겠다며 죽겠다고 뛰어다녔는데 이제 와서 책임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장 과장은 대우건설 인수 후 금호그룹의 행태를 지적하고 나섰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었다.

핵심은 알짜배기 자산은 다 팔아먹고 방만 경영이 문제가 되자 회사를 엉뚱한 데다가 넘기기 급급하다는 것.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매각 당시 현금 8000억원과 2조원에 이르던 자산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일단 대우건설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대우빌딩을 팔아치웠는데 그 돈이 온데간데가 없다.

그 돈을 대한통운 사들이는 데 썼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금호그룹 배 불리는 데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대우건설이 가지고 있던 전국 각지에 알짜부지들도 여기저기 팔려나갔다. 장 과장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장 부지도 있었지만 금호개발에서 사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룹 사정이 어렵다보니 금호개발 측에서는 대우건설이 다시 매입하길 원한다고. 특히 장 과장은 투자가 적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연유를 금호그룹의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찾았다. 원가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제조업 마인드가 있다 보니 영업매출 짜내기에 급급했다는 것.

투자를 더 해야 더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건설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대우건설의 성장에너지를 빼앗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실제 시공능력 수위 자리를 내준 것도 금호와 함께한 기간에서였다.

“국책은행이라면 제대로 된 주인 찾아와야지” 토로
최근에 행태는 장 과장을 더 어이없게 만든다. 중동계 자본(자베즈파트너스)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것이 그것.

내면을 보면 이름도 모르고 성도 없는 정체불명의 자본에 대우건설을 매각한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5000만원짜리에 팔려가느니 우리가 5000만원짜리 회사를 만들어 인수하는 게 더 낫겠다”라고 말이 나올정도.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금호그룹이 자베즈파트너스의 배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까지 매각주간사로 있던 산업은행에 대한 불만도 대단하다. 국책은행인만큼 제대로 된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쉬쉬하며 문제만 키웠다는 게 장 과장의 주장이다. 따라서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매각시점까지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인수해 대규모 투자로 회사를 더 크게 키워낼 주인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우건설이 자신의 ‘꿈’이라고 표현했다.

경북 경주가 고향인 그가 홀어머니와 함께 1989년 학력고사를 보러 서울로 올라와 대우건설 빌딩을 바라보며 “어머니, 제가 성공해서 대우빌딩 건물을 사드리겠습니다”고 호언장담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7년 후 당당히 대우건설에 입사한 아들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어머니를 생각해서도, 집에서 아빠만 믿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봐서라도, 이제 갓 입사해 기회를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대우건설의 미래를 고민하는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 과장은 “금호그룹을 살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게 문제”라면서 “매각에 급급하다가 또다시 알짜자산만 팔아먹고 튀어버리는 자본에 대우건설을 넘기면 그 손실은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가슴을 쳤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