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한 남자가 승용차를 타고 여의도에 있는 국민은행 정문으로 돌진했다. 이 은행의 정문 유리창은 박살이 났고, 승용차는 마치 영화 소품처럼 이 건물에 한동안 박혀 있었다. 홍춘욱(41) 국민은행 파생상품 영업부 소속 이코노미스트는 이 사고를 화제에 올렸다.

금융위기는 교통사고나, 자연 재해를 떠올리게 한다. 예측이 불가능한 속성 탓이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생 금융상품에 물려 파산할 운명에 처할 것으로 내다본 이들은 거의 없었다. 유럽의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지난 1997년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하지만 경기(景氣)는 ‘승용차 사고’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미세하지만, 점차 뚜렷해지는 신호로 ‘추세’를 가늠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한국 경제를 뒤흔든 원·달러 급등 사태도 그 ‘신호’는 비교적 뚜렷했다.

발단은 미국 경제의 이상징후는 뚜렸했다. ‘컨트리와이드(Country wide)’를 비롯한 모기지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신용위기는 서서히 미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 부동산 활황, 그리고 증시호황 등 부의 효과에 도취됐던 소비자들은 위축되고 있었다. 뉴욕에서 펄럭이는 나비의 날갯짓은 태평양을 건너 대한민국에도 미묘한 기류의 변화를 낳았다.

그가 당시 원·달러 환율의 1000원대 상승을 예측한 배경이다. 이러한 확신의 이면에는 미 경제지표가 있었다.

장단기 금리차, 회사채 금리, 그리고 민간기업들의 재고 수준이 그 열쇠였다.
그는 한국 경제를 ‘동광(銅光)’ 개발업체에 비유한다.

동광개발업체는 경기에 민감하지만 생산 물량은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어렵다. 천문학적 설비 투자를 유지해야 하며, 연구개발(R&D)과 더불어 직원교육에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한국 경제호를 지탱하는 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동광(銅鑛) 산업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중간재 성격이 크다는 뜻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지난 1986년 세운 반도체 부문이 대표적 실례이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중후 장대 산업이 중진국 경제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코카콜라, 나이키, 스타벅스, 프록터앤갬블을 비롯한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소비재 부문에서 막강한 브랜드를 구축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국 경제호는 늘 바람처럼 누웠다가 바람처럼 일어선다. “외국인들이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지난해 딜링룸에서 10년 만에 닥친 미국발 경제위기를 고스란히 목도했다.
그는 전문가들조차 환율 급등의 파급효과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새삼 놀랐다고 꼬집는다.

환율 급등이 수출기업에 호재라는 ‘상식’에 사로잡힌 이들이 적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의 급등은 무조건 악재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안전성을 무엇보다 중시합니다.

지난해 환율이 급등하자 금리차를 노릴 수 있는 채권 참가자들도 시장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수출기업들도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습니까. 경제위기로 교역량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환율은 한국 경제호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주요 지표이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대한민국의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년간 평균 변동폭이 100원 정도에 불과했다고 귀띔한다.

“앞으로 10년 동안 주식이나 원자재 등 위험자산은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경제가 장기적 상승 추세를 타도 위험자산에 올인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40대의 일반 투자자라면 최소한 20%이상의 금융자산은 채권 관련 투자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지난해 원화 환율의 급등은 이 흐름에서 벗어난 이례적 현상이었다. 원·달러 환율 변화폭이 연간 변동폭인 ‘100원’ 이상일 때는 그 파장에 주목해야한다.

원·달러 환율은 주가에 비해 간편하고, 또 신뢰할 만한 ‘신호’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환율 급등은 신종플루 환자의 고열 증상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판단의 지표들은 인터넷상에서 클릭 한 번으로 구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자주 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홈페이지(research.stlouisfed.org)다. 그가 중시하는 지표는 바로 환율, 그리고 장단기 스프레드, 회사채 ‘가산금리’, 재고지표이다.

실업률을 비롯한 후행지표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회사채 가산금리, 장단기 금리차 등을 일목요연한 그래프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조지프 엘리스가 운영하는 ‘어헤드 오브 커브(www.aheadofthe curve-thebook.com)’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창’이다.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 4%대 전망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원·달러 환율이 추세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는 또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보다는 미 소비자들의 소비 동향에 주목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두바이 사태가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 뇌관의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가 월마트 소매지수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미 소비자들이 조금씩 지갑을 여는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호재다.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4%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원화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했다. 공휴일도 반납하고 주말이면 인근 도서관에 가서 오랜 집필 작업을 한 끝에 나온 ‘옥동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홍춘욱의 시장을 보는 눈(www.economi sts.pe.kr)’이라는 제목의 홈페이지도 운영 중인 그는 유망 투자자산으로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관련 원자재, 그리고 채권 등을 꼽았다.

“앞으로 10년 동안 주식이나 원자재 등 위험자산은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경제가 장기적 상승 추세를 타도 위험자산에 올인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40대의 일반 투자자라면 최소한 20% 이상의 금융자산은 채권 관련 투자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키움증권 리서치팀장을 거쳐 지난 2007년 국민은행 파생상품 영업팀에 합류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