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1987년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한 후 드라마 <질투>, <아들과 딸>, <태조왕건>, <해신>, <대조영> 등에 출연했다. ‘한국방문의 해’ 명예홍보사절, 보건복지부·한국복지재단 ‘잃어버린 가족 찾기’ 명예홍보대사, 제2기 환경부 환경홍보사절, 굿네이버스 친선대사 등을 맡아 활동해 오고 있다.


인간개발연구원이 지난달 26일 진행한 제1623회 조찬모임에서 최수종 굿네이버스 친선대사(방송인)가 ‘나눔과 배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올해 하희라 씨가 공업용 파라핀에 2도 심화화상을 입어 피부이식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가 정말 기적적으로 깨끗하게 나았다.

치료를 하는 와중에 다른 화상환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지켜보며 하희라 씨가 올해는 화상환자를 위해 기부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했던 이런 것과는 달리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여 함께 나눔을 가지고 봉사를 할 기회를 만들자 하여 CCM복음성가집을 냈다.

이것을 알리다 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고 나눔에 참여하고 싶은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이 앨범에 세션은 모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다. 또한 친구들이 엔지니어와 홍보도 맡아주었다. 화상재단과 협약을 맺고 수익금 전부를 기부했다.

난 집사람에게 존대를 한다. 집사람은 반말을 한다. 이것은 아버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매우 가정적인 분이셨다.

일요일마다 쉴 때가 되면 우리 3형제에게 쉬는 날은 남자들의 몫이고 여자들은 쉬면서 대접을 받으라 하셔서 우리들은 이불 개고 방청소하고 아버님은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날들을 보냈다.

은퇴 후 아버님은 파라과이로 가셨고 온 가족이 이민을 가게 되었다. 아버님이 외국에서 사기를 당하셔서 힘든 시기가 있었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누나와 둘이 남아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의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또 주위의 도움을 받고 아버님이 재기를 하시고 그 와중에 난 미국 콜로라도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결혼을 했다. 당시에 누나의 남편은 가수로 활동했던 조하문 씨다. 아버님이 조금 나아졌을 때 이런 모든 일들이 진행되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년 정도 지나 생활비, 학비 문제에 급기야는 아버님까지 돌아가시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가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잘 쓰는 말 7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가 ‘미안해’요,
두 번째가 ‘괜찮아요’,
세 번째가 ‘좋아요’,
네 번째가 ‘잘했어요’,
다섯 번째가 ‘훌륭해요’,
여섯 번째가 ‘고마워요’,
일곱 번째가 ‘사랑해요’다.
과연 이 말들이
천국에서만 쓰는 말이겠는가?”

가난 벗어나려 연기자 생활 시작

간혹 지인들에게 용산구청을 내가 지었다고 이야기한다. 직접 디자인해서 지은 것은 아니고 그저 벽돌을 날랐다.

그외에 매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등 눈에 보이는 일은 다 했다. 그런 와중에 좋은 기회가 왔다.

고3 여학생 과외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아버님이 당시 KBS예능국 국장님이셨다. 그분께서 내 딱한 사정을 듣고 탤런트를 권유하셨다. 그때 제 첫마디가 “돈줍니까?”였다. 그리고 연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무렵 광고를 많이 찍게 되었다. 한 음료 광고를 찍게 되었는데 그 당시 최고의 스타들만 찍는 광고였다. 첫 출연이 조용필 씨였고 두 번째가 나였다. 모델료를 받는데 당시 과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찍고 나서 난리가 났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음료회사가 다른 종교재단이라서 문제라는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고민하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욕먹지 말고 기부를 하자 하셨다.

난 안 된다고 하였다. 지금 나가서 전세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기부하고 네 이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곤 그 당시 어려운 이웃 고아원에 그 돈을 모두 기부했다.

하희라 씨와 만나면서 참 감사할 일들이 많았다. 첫째 아들과 둘째 딸아이에게 존대한다. 하희라 씨와 결혼하며 참 힘들게아이를 가졌다. 유산을 세 번 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남자에게 일하는 고통, 여자에겐 애 낳는 고통을 주었다. 남자들의 일하는 고통은 참 크다. 그와 같이 여자에겐 애를 낳는 고통을 주었다.

유산 세 번 이후 여자에겐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을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 여성들은 예전 우리 어머님 때의 여성들처럼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일을 하고 엄마, 며느리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한다.

첫아이를 어렵게 가지면서 같이 병실에 들어갔던 아이가 중환자실에 가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이제는 아이를 위한 봉사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아이를 낳을 때부터는 아이를 위한 나눔을 시작했다.

가정이 잘되어야만 만사형통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끼리 싸울 때는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과 3학년이다.

왜 싸웠는지 물으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얘기해 보세요. 왜 싸웁니까? 서로 화해하십시오.” 이렇게 말한다.

사실 어떤 때는 혼내고 싶은 맘도 간절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라곤 존대밖에 없는데 한 번의 말실수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이렇게 말한다.

가정이 잘돼야 만사형통


얼마 전 매년 하는 나눔에 처음으로 아이들이 동참하게 되었다. 자신들도 이번 CD를 만들 때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참여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로, 동생들이나 친구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하자 자기들도 악기를 다루니까 봉사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방글라데시와 네팔 등에 다녀온 뒤 기사와 동영상을 보며 어느새 아이들의 맘속에도 그런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요즘 온라인상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뒤집어 생각하라, 바꿔 생각하면 세상은 아름답다. 수고한다는 말을 거꾸로 하면 고수가 됐다가 된다. 자살을 거꾸로 하여 살자가 된다.

모두들 안 된다고 ‘No’라고 할 때 거꾸로 On이라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잘 쓰는 말 7가지가 있다. 외국의 어떤 학자가 했던 말인데 ‘The seven languages used in heaven.’ 그중 첫 번째가 ‘미안해요’다. 두 번째가 ‘괜찮아요’, 세 번째가 ‘좋아요’, 네 번째가 ‘잘했어요’, 다섯 번째가 ‘훌륭하다’, 여섯 번째가 ‘고마워요’, 일곱 번째가 ‘사랑해요’다.

과연 이 말들이 천국에서만 쓰는 말이겠는가?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와 존중을 하며 서로를 자랑스러워하고 믿음을 가진 채 생활하면 그것이 꼭 나눔과 배려가 아니라도 그 행동 하나하나가 나눔과 배려라고 생각한다.
정리=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