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의 입

역혁신을 말하다, 롯데가 달라진다

롯데그룹 직원들의 책상마다 책 한 권이 놓였다. 제목은 <리버스 이노베이션>.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의 저서다. 책을 보낸 이는 신동빈 회장. 신 회장은 틈나는 대로 국내외 석학의 저서를 직접 찾아 읽는 독서광이다. 올 초에는 국내 번역판이 출간되기도 전인 책, <리버스 이노베이션> 특별판을 대량 제작해 그룹의 팀장급 직원 2000명에게 선물했다. 책 앞에는 자필 서명이 담긴 편지글도 넣었다. 두 페이지에 이르는 서신을 통해 신 회장이 말하고 싶었던 건 사실 세 글자였다. 역혁신. 반전시키다, 뒤집다의 의미를 가진 ‘리버스(Reverse) 이노베이션’ 말이다.

서신의 흐름 역시, ‘반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는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를 재건하는 데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면서 “하지만 예측과 달리 우리는 반세기 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며, 이 같은 성장의 이면에는 기업의 도전과 임직원의 노고가 서려 있다”고 했다. 신 회장은 이어, “그러나 더 큰 성장을 지속하기에 대한민국은 좁다”며 반전을 뒀다.

그렇다면 ‘넓은 시장’은 어디일까. 신 회장은 ‘신흥개발국’을 가리켰다. 그는 “전 세계 인구의 85%인 58억 명은 신흥개발국에 살고 있다”면서 “신흥개발국의 GDP 총계는 35조달러로 전 세계 GDP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이어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신흥개발국가들의 성장속도가 선진국의 2배가 넘는다는 점”이라면서 “새로운 기회의 중심이라는 확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특별판까지 제작해 <리버스 이노베이션>을 직원들에게 선물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저서에서 신흥개발국을 단순한 소비시장이나 생산기지로 보지 않았다. 대신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의 지렛대로 전망했다. 신 회장은 “이 같은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지지를 보낸다”면서 “특히 동남아시아, 중국, 인도 등의 신흥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을 확장하고 있는 그룹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언급했다.

당초 서신에 담겼던 글귀는 며칠 전 신 회장의 입을 통해 다시금 흘러나왔다. 지난 8월 26일 개최된 ‘2013 롯데마케팅 포럼’을 통해서다. 포럼은 지난해 실시된 이후 올해 2회째를 맞았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리버스’였다. 이미 직원들과 방향성을 공유한 신 회장은 소통하는 데 한결 수월한 모습이었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마케팅 기법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고, 임직원들은 깊은 동의를 표했다. 신 회장은 또, “생각과 방법을 뒤집어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하고, 현재의 경쟁 구도를 뒤집어 아시아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자”고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고빈다라잔 교수 또한 직접 참석해 역혁신 이론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사실 롯데 그룹의 ‘역혁신’은 하루아침에 나온 구호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경제 상황 악화에도 불구하고 사업부문별로 꾸준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해외사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한 결과, 해외 매출이 10조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상반기,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기도 했지만,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이마트’ 인수가 그 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왔던’ 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이제 ‘리버스’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역혁신과 롯데그룹, 이제 잘 버무려질 일만 남겨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