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빠졌다. 지난해 12월 5일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글로벌 파트너사들과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등 경영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보필하는 ‘조용한 조력자’에서 그룹 현안부터 미래전략까지 챙기는 ‘적극적 리더’로 변신하고 있는 듯했다.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행보에 삼성 관계자는 “부회장 승진 후 삼성을 찾는 국내외 고위 인사를 이건희 회장 대신 맞는 일이 많아졌다”며 “이 부회장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회장은 지난 1월 초 폴 오텔리니 인텔 회장을 시작으로 세바스찬 제임스 딕슨 CEO, 시진핑 중국 주석,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 CEO, 라이트 호퍼 BMW 회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이 부회장의 행보가 IT-중국-자동차 전장부품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1분기 실적 이후 외국계 IB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내 시장관계자와 투자자들까지 ‘삼성 성장성 한계’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가 주목받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삼성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후계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듯이, 이 부회장도 IT-중국-자동차 전장 부품을 삼성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평소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에 강한 의욕을 보여왔다. 삼성은 2010년 자동차용 전지를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BMW·폴크스바겐·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의 CEO들과 만나 여러 부문에서 공조할 방안을 논의했고 이후 독일 BMW, 미국 크라이슬러, 인도 마힌드라 등과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D램 위주의 차량용 반도체 사업영역을 스토리지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삼성전자의 계획도 이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 부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최근 공개된 BMW의 첫 전기차 i3에 삼성의 배터리를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이 부회장이 자동차 부품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성장성이 좋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 규모는 2015년까지 580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327조원)· 메모리 반도체(62조원) 시장을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 부회장으로서도 성장성이 좋은 전장부품 사업을 잘 키우면 본인의 경영능력을 대내외에 입증할 기회도 얻을 수 있고, 삼성의 성장 한계에 대한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 시장 관계자는 “전기차 사업이 점차 확대되는 만큼 삼성의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도 함께 탄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이 부회장은 중국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거대한 잠재력을 갖춘 중국 시장을 흡수해 글로벌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목표다. 그는 수시로 중국을 오가며 꾸준히 현지 인맥을 쌓는 것은 물론 중국에서 진행 중인 사업과 관련 현안들도 직접 챙기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한 이 부회장은 중국문화에도 조예가 깊어 중국인들과의 만남에서도 전공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중국 인맥의 정점은 중국 최고의 실력자 시진핑 국가주석에까지 닿아 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에서 개최된 보아오 포럼기간 동안 주석과 두 차례나 만나 투자방안을 포함한 여러 현안들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중국 관심은 최근 삼성전자의 중국투자 확대 움직임에서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 시안에 총 70억달러를 투자해 10나노급 낸드플래시 반도체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또한 2015년까지 R&D 인력을 7000명까지 확대하고, 투자도 3억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같은 투자 확대에 힘입어 중국대륙에서 삼성이 벌어들이는 매출도 2007년 276억달러에서 2011년 말 기준 510억달러로, 5년 만에 2배가량 뛰어올랐다.

이 부회장은 IT 사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DS 부문(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듯했다. 지난 4월 이 부회장은 구글의 수장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OLED 생산라인이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을 방문했다. 이에 구글과 삼성이 스마트폰 협력에서 나아가 구글TV, 구글글래스를 포함한 다양한 사업에서 OLED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삼성디스플레이 입장에서도 구글과 OLED에서 새 협력관계를 맺게 된다면 애플 리스크를 줄이고 고객사를 다변화할 수 있게 된다.

아직 이 부회장의 경영성과를 논하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대체로 그룹 살림을 잘 챙기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승진한 이후 해외 주요 시장을 돌며 삼성전자의 각 사업부문을 하나하나 챙기는 등 삼성전자의 사업을 총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삼성의 현안뿐만 아니라 기존에 이 회장이 책임졌던 큰 구상도 이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맡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