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석의 ‘부동산 생각하며 투자하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월세 대책이었나

8.28 부동산 대책은 2010년 이후 발표된 부동산 관련 대책들 중 그 실효성에 대한 업계와 시장의 전망이 가장 일치하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한목소리로 주택 매매량 증가와 그로 인한 선순환을 외치던 유명 부동산 전문가들조차 그들이 외쳐온 후속 대책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책의 약효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결국 오락가락하며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오던 정부의 부양식 부동산 정책들이 더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게 되었음을 이제 모두가 깨달았다. 정책을 구상하고 입안하는 국회와 해당 부처의 판단 착오가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본다.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정보들, 그 정보를 장악해버린 일부 부동산 정보업체들과 은행권 그리고 그곳에 몸담은 소위 전문가들은 그들이 내놓는 목소리가 마치 부동산 업계와 시장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행세를 해왔고 일방적인 주택 가격 떠받치기와 거래 증가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떠들자 이를 그대로 정책에 반영해왔던 것이 이런 상황을 몰고 왔다.

부동산 중개업계와 그들로부터 수익원을 창출해 운영되는 부동산 정보업체는 무조건 주택 거래가 많이 이뤄져야 이익을 보는 집단들이다. 그들은 바람직한 시장 흐름을 만드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 어떤 검증된 부동산 이론들도, 과거 사례들도 그들의 목소리 앞에서는 의미를 잃고 만다. 국토 정책, 도시 개발, 주택 시장 등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학계의 인사들이 많지만 언론은 늘 부동산 정보업체와 중개업소들, 은행권의 목소리만 기사에 반영해왔다. 그리고 그런 단편적인 정보들이 여론처럼 형성돼 정부는 그에 맞춘 정책들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다주택자 등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상한제 신축 운영,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등 4.1대책 후속조치를 조속히 마무리하는 한편 취득세율을 주택 시가 구간별로 1~3% 수준으로 영구 인하하겠다고 한다. 수익공유형 모기지와 손익공유형 모기지라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매우 생소한 방안이 발표됐고 장기 주택 모기지에 대한 소득공제를 확대하고, 국민주택기금에서 근로자/서민의 구입자금 지원을 다시 확대하는 방안도 있었다.

지난 4.1대책이 ‘두 달 천하’로 끝난 것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봤다. 심리적인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특성상 거래 심리 회복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어떤 특단의 대책이 나와도 반짝 효과에 그칠 만큼 시장에 내성이 생겨버렸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4.1대책 이전까지는 그나마 정부의 종합대책이라는 기댈 언덕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그 언덕마저 유명무실해졌다.

2008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더욱 둔화되고 양극화로 서민의 가계소득은 좀처럼 오르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수도권 인구 증가율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내수경기, 소득, 인구에 의해 작동해온 국내 부동산 시장, 특히 주택 시장에 반등 여력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집값 사이클(통상 4~6년 주기)을 볼 때 지금쯤 오를 때가 됐다는 주장들도 경기 호전에 대한 명확한 가능성이 맞물리지 않을 때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민간, 공공 분양 물량에 대해 인위적으로 공급 시기를 늦춘다든지, 거래세율을 낮춰 주고 대출금리 혜택을 주면서 집값의 하락을 막아보겠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계부채 폭등과 가계소비 위축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땐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부동산 정책은 집을 가진 사람과 집을 가지려는 사람만을 위해서는 안 된다. 무주택 세입자를 위한 정책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나 ‘행복 주택’이 그런 역할을 하기엔 분명 역부족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월세 대란은 집이 없는 사람, 집을 살 돈이 부족한 사람 때문에 벌어지는 것인데도 이 문제를 소유를 위한 주택 거래로 풀려는, 그렇게 집을 사게 해서 전세 수요를 줄여보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매매 시장과 임대 시장이 이제는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음에도 매매 시장의 활성화가 임대 시장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다.

4.1대책 후속 조치로 발표된 수도권 주택 공급 조절 방안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즉 공급 속도를 조절해 집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과 공공 택지 개발사업 모두를 조절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공공주택 공급량이 아직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민간건설 분야가 경제 비중을 크게 차지하던 80~90년대의 부동산 시장 구조가 아직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면 공공주택의 공급까지도 줄여야 한다는 발상이라면 주거 복지, 서민 가계 복지는 왜 들고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부동산 정책의 또 한 가지 모순점은, 수도권 주택 시장과 지방 지역 부동산 시장의 차이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표적으로 취득세 감면이 있다. 지난해 취득세 감면안이 거론될 당시 한 부동산 정보업체 리서치센터장은 취득세만 감면해주면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 거래량과 신규 분양률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정작 취득세 효과는 수도권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분양가 2억~3억 하는 지방 도시의 신규 단지들에서는 지난 7월 1일을 앞두고 잔금 완납과 입주를 동시에 하려는 수요가 넘쳐났다. 취득세 자체가 거래가액이 클수록 감면 효과가 줄어든다는 기본적인 원리도 몰랐다는 것이다.

주택 시장은 거듭 강조해온 것처럼 투자 중심에서 실수요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집값은 우상향 일변도였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그러한 긴 오름세는 꺾였다는 것이 학계와 건설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최근에 만난 건설 시행업체, 시공사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앞으로 주택 가격이 전국적으로 동시 상승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오직 중개업소들과 부동산 정보업체들, 은행권에서만 집값이 곧 오르니까 사라고 한다.

이것이 필자가 바라보는 연이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번번이 무위에 그치는 이유들이다. 지금도 지방 주요 도시의 상당수 신규 아파트 단지에는 프리미엄이 붙고 입주율도 준공 후 1개월 이내에 90%를 넘기기도 한다. 주거환경이 뛰어나고 교육환경이 잘 갖춰져 있으면서 한동안 주택 공급이 정체되었던 곳에는 실수요자들이 얼마든지 대기한다. 수익형 부동산이나 간접투자 상품 등 대체 투자 유형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은 이처럼 시장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부동산 문제를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과 아파트에 맞춰놓고 풀려다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시장의 흐름마저 훼손시킬 우려가 커지는 법이다. 서울과 수도권, 인기 신도시만 바라보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인위적인 통제식 관리보다는 시장에 일단 맡기고 서민 가계에 심각한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만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길이며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연착륙과 주거 안정, 주거 복지를 모두 달성하는 해답이 될 것이다.

 

안민석 riomanjun@hanmail.net 

전 한국경제신문 전국상권대해부 및 자영업컨설팅 자문위원, MBN 생방송부동산 및 MTN 부자들의 비밀노트 출연, 현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