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농업학

주요 식량원, 천연 공기청정기, 피로회복제...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식물의 별명이다. 식물은 이 정도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의약성분의 주요 원천으로 식물이 주목받고 있다. 줄기세포에서 유효성분만을 뽑아 사용하는 바이오 제약기술이 개발되면서 의약품의 대량생산체제가 가능해졌고, 의약품 가격도 대폭 하락했다. ‘식물공장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은 더 건강하고, 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식물은 인간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 식량원이다. 동시에 귀중한 생리활성 물질을 제공하는 의약성분들의 주요 원천이다. 특히 식물의 일부 성분들은 인체 내 성분들에 작용해 효소나 호르몬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질병의 단백질들과 결합해 병원균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아주기도 한다.

해당 작용을 우리는 ‘인체 면역성이 강화된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인체의 건강과 밀접한 작용을 하는 식물의 활성성분을 추출해 의약품이나 화장품에 활용하는 기술들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다. 식물 속에 가장 순수한 약용성분이 집약돼 있는 화학물질만을 추출해 이용하는 기술이 첨단 제약기술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식물 속에 함유된 약효성분을 얻기 위한 고전적인 방법은 식물을 대량으로 경작해  유효성분을 추출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재배 환경에 따라 중금속, 농약, 환경 독소들에 오염될 수도 있다. 결국 오염물질과 접촉하지 않고 식물의 활성성분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기농 재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공해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고 살균된 보호환경 속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수경재배법이 발달해왔다. 수경재배는 식물세포들을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하에서 재배하므로 성분의 안정성을 신뢰할 수 있고, 계절에 따른 생물학적 주기와 관계없이 일 년 내내 생산할 수도 있다. 성장에 가장 적합한 발육환경을 인공적으로 부여할 수도 있다.

식물세포를 이용해 의약품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식물공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좁은 면적에서도 식물에서 얻은 유효성분의 단백질을 대량 생산할 수 있어 한국과 같이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고부가가치의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식물 줄기세포로 유효성분만 뽑아 쓰는 바이오 제약기술 부상

여기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식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대신에 식물 줄기세포를 이용해 유효성분만으로 분화시키는 바이오 제약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식물 줄기세포는 동물과 달리 두 가지 특성을 갖는다. 하나는 모든 세포로 분화되는 전분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줄기세포의 수가 유지되도록 하는 자기 재생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줄기세포가 계속해 새로운 세포조직을 만들어내므로 동물과 달리 식물은 노화과정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분화 능력을 가진 줄기세포가 줄곧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성장하게 한다. 식물 줄기세포는 식물 전체에 고르게 분포돼 있어 아무리 외부에서 생명의 위협을 가해도 또다시 새로운 세포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씨앗뿐 아니라 줄기나 뿌리를 심어도 식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분화 능력을 갖춘 식물 줄기세포는 위치에 따라 뿌리 끝 분열세포, 줄기 끝 분열세포, 관다발계 분열세포로 구분한다.  이들 식물 줄기세포는 형성층(cambium)이라 불리는데 식물조직 깊은 곳에 세포조직이 2~3층으로 얇은 세포벽 형태로 존재한다. 이를 분리해내려면 화학적 처리나 물리적 처리를 해야 하는데 힘이 가해지면 쉽게 손상돼 줄기세포 기능을 잃기 때문에 분리하고 배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지난 2006년 국내의 한 중소기업인 ㈜운화가 오랜 연구 끝에 다분화 능력 줄기세포를 분리해내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이들은 분리된 식물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시킨 후 생물반응기에 영양성분과 함께 넣어 배양생성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첫 번째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 ‘또별’인데 이는 인삼을 재배하지 않고 인삼의 유효성분만을 선택적으로 배양해 만든 상품이다. 인삼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삼의 유효성분만을 생물반응기에서 대량으로 제조한 것이다. 현탁용액에서 배양된 유효성분들은 체로 거른 후 건조시키면 상품이 된다. 지금은 보조식품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면역 증강효과나 항바이러스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 밖에 줄기세포 분리기술을 이용해 주목나무의 항암제 성분인 파클리탁셀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은행나무의 혈류개선 성분이나 토마토 내에 있는 항산화 약용성분인 펙틴이나 루틴 성분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10여 종의 상품들을 개발했다고 한다.

LG생활건강도 2011년 가을, 식물 형성층의 줄기세포 배양액을 담은 안티에이징 제품 ‘이자녹스 X2D2 오리지널’ 5종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식물 줄기세포 배양액을 통해 노화 피부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해준다고 한다. 이처럼 식물세포를 배양해 약이나 화장품을 대량 제조하는 기술은 대부분 제약사나 화장품 회사들이 추구하는 기술이다.

식물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로 대량생산체제 가능해져

2009년도에 H1N1 조류 독감이 급속히 퍼졌을 때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고갈된 적이 있었다. 독감 백신은 전통적으로 달걀에서 키웠는데 이 기술은 매우 느리고 비싼 공법이었다. 백신 제조사들이 60여년 넘게 기술을 전혀 개선시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신 고갈 소동이 일어나자 미국 국방성은 대책을 마련하고 H1N1 백신 개발에 매년 1000만달러 지원에 4000만달러짜리 GreenVax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연구자들은 조류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단백질을 분리해 박테리아의 유전자 속에 삽입시켰다. 그리고 이 박테리아로 담뱃잎을 감염시켜서 유전자가 이 식물의 유전자 속에 포함되도록 했다. 아울러 담배를 성장시킨 후 담뱃잎으로부터 독감 바이러스 단백질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이 기술개발로 H1N1 백신을 12개월 안에 1000만 명이 접종할 수 있는 양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아직도 임상실험이 진행 중인 기술이지만 식물세포에 유전자 조작을 해 병원균 단백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 사례다.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는 이스라엘 벤처기업인 프로탈릭스 바이오세라퓨틱스(Protalix Biotherapeutics)와 함께  유전 질환인 고셔병을 효소보충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엘레리소’라는 주사제를 개발해 2012년 6월에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이는 식물세포로 만든 의약품으론 사상 처음이다. 효소 유전자를 당근 세포에 넣고 배양한 후 효소성분을 추출해 생물반응기에서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기존 치료제보다 가격이 25%나 저렴하고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한다.

분자농업, ‘식물공장’ 시대 열다

이를 기점으로 식물세포를 이용해 의약품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식물공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한다. 좁은 면적에서도 식물에서 얻은 유효성분의 단백질을 대량생산할 수 있어 한국과 같이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고부가가치의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분자농업은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서 식물에 유용한 유전형질을 삽입시켜 발현시킴으로써 유용한 단백질(효소나 백신)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이다. 식물을 이용해 백신을 만들면 동물세포를 이용하는 경우에 비해 병원균의 감염 우려가 없고 배양조건도 까다롭지 않아서 생산이 쉽고 매우 경제적이다.

H1N1 사례와 같이 유전자 이식을 통해 식물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항원과 항체들을 포함한 재조합된 단백질을 함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식물을 번식 재배하는 것이 아니므로 유전자 조작식물과 같이 환경을 오염시킬 위험성이 전혀 없다.

이젠 식물은 단백질 생산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DNA 형질 전환이 쉬운 담배를 발현 시스템으로 사용해왔지만 점차 감자를 비롯한 꽈리, 토마토, 당근, 시금치, 알팔파 등에서 경구용 백신이나 생의약품 생산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다른 식물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은 콩과류에 대한 연구는 매우 유망해 보인다.

이제 농업이 식용작물 생산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 많은 바이오 제약업체가 다양한 식물공장을 개발 중이다.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질병 치료용 작물을 재배하는 생명공학산업 종사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재배작물에 인간의 단백질 유전자를 집어넣고 이들로부터 치료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식물공장에서 수경재배되는 감자나 고구마만 먹어도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시대가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