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성묘객들 발길이 숲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문제다. 땅은 좁은데, 사망자는 늘어만 간다. 이들이 갈 곳이 없다. 심지어 2050년에는 연간 사망자가 세 배로 늘어난단다. 이미 우리는 장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30년 후에는 어쩌나. 최근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장’이 떠오르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게 ‘수목장’이다. 일반 국민의 자연장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최근에는 자연장지 조성이 제한됐던 일반 주거ㆍ상업ㆍ공업지역 등에 개인 및 가족의 자연장지 조성이 가능하도록 개정안이 공포·시행되기도 했다.

    

13억 인구의 중국. 사는 사람이 많은 만큼 죽는 사람도 많다. 연간 1000만 명씩 쌓여가는 사자(死者)들이 국토를 잠식한 지 오래다. ‘바다장’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묘지 부족현상에 시달린다. 광저우시에서는 ‘바다장’에 보조금까지 내걸었을 정도다. 해외토픽감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는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고, 피할 수도 없다. 바로 ‘죽음’이다. 앞으로 40년간 약 1900만 명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산 자의 땅은 좁아지고, 죽은 자의 땅은 넓어진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땅이 비석으로 뒤덮이고 있다. 여러 지자체는 이미 장지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먹고살기 힘든 시대’라지만, 죽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이에 대응할 인프라와 서비스 마련, 장례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한 시기다. 바다에서 해수욕장 간판 대신, ‘바다묘지’ 간판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7억5000만 평 국토, 향내에 시달렸다

죽은 자는 말만 없는 게 아니다. 누울 자리도 없다. 통계청은 지난 40년간 국내에서 사망한 사람이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연간 25만 명 정도가 유명을 달리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출생률 감소와 사망률 증가의 엇박자는 갈수록 심화돼 2050년이 되면 연간 사망자 수가 75만 명 정도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땅은 한정돼 있는데, 죽는 사람들은 늘어가니 필연적으로 장지부족 현상이 따른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매장하는 문화를 선호했던 탓이다. 유교 사상과 사자에 대한 예에서 비롯된 문화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화장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으며 법률상으로도 유해를 화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심각한 묘지 부족현상을 겪지 않는 이유다. 수십년 간 이어져온 매장문화로 우리 국토의 자연림이나 녹지도 상당부분 소진됐다. 특히 경기도 파주나 벽제 등의 외곽도시는 토지의 상당부분이 묘지로 거래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묘지로 사용하고 있는 땅은 약 2479㎢(7억5000만 평) 정도로, 이는 제주도 면적 1.25배에 달하는 크기다.

 

장례문화 패러다임 바뀐다

매장문화에 제동이 걸린 건 지난 200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부터다.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를 책임져야 할 정부가 직접 움직인 것. 당시 거론됐던 ‘시한부 매장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묘를 개장한 후 화장토록 한 것)’를 계기로, 굳건했던 매장문화의 기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동구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묘 자리 판다’는 광고가 득세했고, 화장은 일부 못사는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화장률이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조사에 따르면, 1991년 17.8%에 불과하던 화장률은 점차 높아져 2005년에 처음으로 50%를 돌파했고(52.6%), 지난 2011년에는 71.1%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자신의 장례 형태를 묻는 설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10명 가운데 8명 정도(79.3%)가 “내 장례는 화장으로 하길 원한다”고 답했고, 매장을 원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옮겨진 ‘장법’의 패러다임은 자연스레 유골을 처리하는 2차장의 진화를 이끌었다. 수목장, 수목장림 등 자연장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전통에 기댄 상투적인 예식을 벗어나 좀 더 합리적인 장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강동구 원장은 “국민총생산(GNP) 2만달러 시대가 되면 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진다”며 “우리도 2만달러 시대에 이르면서 죽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자연장 관심 증폭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을 자연에 묻거나 뿌리는 것을 말한다. 나무를 심어 그 밑에 유골을 안치하는 ‘수목장’과 기존 나무를 이용하는 ‘수목장림’이 가장 일반적이다.

지난달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자연장 선호도는 31.2%로 납골당 등 기존 봉안시설(25.5%)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전체 장묘 방식에서 자연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3%대에 불과하지만, 자연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연장지 수도 차츰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선택에 정부도 힘을 보탰다. 지난 6월에는 그동안 자연장지 조성이 제한됐던 일반 주거ㆍ상업ㆍ공업지역 등에 개인 및 가족의 자연장지 조성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시행됐다. 쉽게 말하면 집 앞 뜰에도 장지 조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도 현재 8000위를 수용할 수 있는 파주시 용미리 자연장터를 2015년까지 5만2000위(3만㎡)를 안치할 수 있도록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친환경 자연장 활성화와 장례문화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장 활성화는 장례비용을 낮추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강동구 원장은 “우리나라의 장례비용은 평균 1200만원 정도로, 지나치게 고비용 구조”라고 했다. 이는 1인당 GNP의 10~15%인 유럽이나 15~20%선인 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여기에 2000만~3000만원에 이르는 매장ㆍ납골 안치 비용을 더하면 총 장례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수목장의 경우, 통상 1000만원 정도(나무 한 그루 기준)로, 한 나무에 최대 8명까지 합동 안치가 가능해 장기적인 비용절감 효과가 탁월하다. 강동구 원장은 “국가 차원에서는 매장으로 인한 국토 비효율성을 줄이고, 개인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나무라는 상징물을 통해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정서적인 만족감도 주는 것이 바로 수목장”이라고 설명했다.

 

부정적 시각, 비현실적인 정책… 진입장벽 넘어야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정부도 부양책을 마련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일단 더 많은 자연장이 갖춰져야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이번에 개정된 시행령에서는 가족, 종중(문중)이 사용하는 자연장묘는 신고제로, 종교단체나 재단법인이 만드는 것은 허가제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부양의지와는 달리, 실제 허가권자인 지자체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지자체 입장에서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묘지’의 허가 남발은 큰 부담이다. 주민들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강동구 원장은 “수목장이 많이 생겨 저렴한 장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소비자고, 이를 반대하는 것도 소비자인 상황”이라며 “우리 스스로 진입장벽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고 있는 형국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의 현실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수목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거 지역에 자연장지 설치를 허용한다는 것은 내 집 안마당에 무덤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인데, ‘평생 가옥’의 개념이 약한 국내 현실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강동구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

 

‘자연장’ 얘기가 자주 들린다

전통적으로 매장문화를 지켜오다가, 2005년부터는 화장률이 매장률을 앞섰다. 화장 후에는 유골을 처리하기 위해 봉안당, 납골묘터 등이 생겼고, 여기서 더 진화한 게 자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의 효율적 활용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장례의 고비용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도 장례문화 개선은 필요했다. 자연장은 그 대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자연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도 만들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 공감했는지, 사람들의 반응도 예상보다 좋다. 향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가의 장례비용, ‘자연장’이 대안일까?

현대 한국사회의 장례문화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장례문화 개선을 위한 사회적, 정책적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장례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좀 더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10% 정도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만일 1000만원의 장례비용이 든다고 치면 반은 실제 비용이다. 수의를 맞추고, 관을 짜고, 염습하는 것들로 이는 줄이기 힘들다. 여기에 10% 정도의 인건비를 뺀 나머지는 전부 시설비다. 대형 병원 장례식장은 특급호텔보다 자릿세가 비싸다.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연장이 활성화되면 장례 후 2차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례문화를 단순히 비용적인 부분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무조건 비용만 줄이려고 한다면, 사실 돈을 거의 안 들이고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화장해서 인천 앞바다에 뿌리면 뱃삯밖에 들지 않는다. 장례는 예식이며 문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형식과 절차가 필요하고, 어느 정도는 부담도 가져야 한다.

 

장례문화가 변한다는 것의 의미는?

장례는 한 가정과 사회의 문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의례다. 이는 사회의 뿌리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국가든 GNP 1만5000달러에서 2만달러 정도가 되면 죽음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다. 먹고살만해지면서 좀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그렇다. 뿌리가 바뀌면 가지도, 열매도 달라진다. 장례문화의 변화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들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