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법정에서 재판관 이름은 ‘부화뇌동(附和雷同)’이다. 기업 위기 시 여론의 법정에서 자신을 적극 변론할 것인가, 침묵하거나 제한적으로 변론할 것인가는 전략적 선택에 좌우된다. 하지만 하이 프로파일로 여론의 법정을 장악하는 업체는 자신감 넘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 업체는 평소 돌아봄과 준비가 철저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은 ‘이런 상황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좀 더 지켜봅시다”라는 제안이 터져나온다. ‘지금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에 나서면 오히려 일을 더 키울 수 있으니, 일단 조용히 가봅시다’는 신중론이 대두된다. 일선으로부터 대응 방법을 일러 달라는 요청이 오면 ‘우선 시급한 것부터 일선에서 처리하고, 그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는 현실적 처리를 강조한다. 즉,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아무것도 빨리 하지 않는 모양새다.

기업 위기관리에서 정답은 없다. 일부 위기가 서로 유사해 보여도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수많은 내·외부 변수들 때문에 정형화된 해결책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심지어 같은 회사가 유사한 위기를 반복해 겪을 때도 각각의 위기상황은 상당 부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위기 시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라’는 하이 프로파일(high profile) 전략이나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라’는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 전략 중 어느 하나가 항상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나 기업의 본능 관점에서 대부분 기업과 구성원들은 위기 발생 시 극도로 위축되고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연히 동물적 방어본능이 의사결정을 지배하게 되고, 생존을 위한 대응들이 주를 이룬다. 마치 고슴도치가 적에게 쫓길 때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혼란의 시점이 되면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멈춰서 몸을 웅크려 온몸의 가시들을 곤두세우는 행태와 비슷한 본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들은 위기 시 종종 커뮤니케이션을 극도로 제한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다. 위기 발생 시 기업이 커뮤니케이션해야만 하는 시점에도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게 되니 문제다. 일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더라도 방어적 본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극도로 제한하게 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위기 시 기업은 즉시 여론의 법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심판을 받게 된다. 자사 관련 위기가 발생하면 CEO는 즉시 그 여론의 법정에 자신의 회사가 서게 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법정 한쪽에는 수많은 배심원이 앉아 있다. 다른 편에는 우리 회사의 잘잘못을 따져대는 언론과 NGO, 규제기관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앞쪽에는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감정적이며 ‘부화뇌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재판관이 나무망치를 흔들며 우리 회사의 변론을 들으려 기다린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재판이 몇 시간 또는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형국이니 대응도 만만치 않다. 항소 역시 불가능하다. 과연 이런 여론의 재판에서 기업은 로우 프로파일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하이 프로파일을 밀어붙여야 하는가?

로우 프로파일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자신감 결여다.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기업 철학과 문화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충분한 자산이 쌓여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굳건한 ‘무죄(not guilty)’ 마인드가 내부적으로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침묵하거나 로우 프로파일 전략으로 임하게 된다.

문제는 여론의 법정에서 수많은 배심원이 기업의 이런 침묵과 로우 프로파일을 유죄에 대한 인정(guilty)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여론의 법정에서 검사의 역할을 하는 언론과 NGO, 규제기관들의 커뮤니케이션이 배심원들에게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면  ‘부화뇌동’ 재판관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자명해진다.

반면, 위기 시에도 하이 프로파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고수하는 기업에는 공통적으로 자신감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에서 평소 충분한 검토와 자산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위기 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이미 갖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배심원들에게 자사의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충분한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등을 통해 검사 측의 공격 의지도 완화시킨다. 여론의 법정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수요를 집중적으로 해소하면서 재판관의 우호적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을 편다.  이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며,  그 자신감은 다시 평소의 돌아봄과 준비에 기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