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정기 임원인사 시즌이 왔다. 프로야구 선수들에 있어 연말이 재계약을 앞두고 뜨겁다는 이유로 ‘스토브 리그’로 불리는 것처럼 재계 역시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한 인사 재정비 작업에 분주하다.

특히 올 연말 정기인사의 관전 포인트는 서서히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오너 3세’들의 승진 여부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옛말이 무색하리 만큼 2010년은 3세 경영의 ‘닻’이 올려질 해라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족쇄’ 벗은 삼성, 이재용 체제 굳히나
재계 연말 인사 중 가장 시선이 가는 쪽은 아무래도 삼성이다. 특히 작년 4월 삼성 특검 결과 발표 이후 최고고객책임자(CCO) 보직을 내놓고 국내외 사업장을 점검하고 있는 이재용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동안 ‘족쇄’로 여겨졌던 에버랜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등의 소송 사건을 어느 정도 ‘털어버린’ 만큼 이 전무가 보직을 갖고 경영에 복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이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이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서거나 삼성전자 계열사 혹은 해외법인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전무는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임원진에 합류한 이후 2003년 상무를 거쳐 2007년 1월 전무로 승진했었다.

삼성 인사에서는 이 전무와 함께 올 들어 ‘후계자’ 대열에 본격 합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에 힘을 실어줄 인사 내용이 포함될지도 관심 포인트다. 여기에 승진 연한이 찬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의 승진 여부에도 시선이 모아진다.

현대·기아차그룹의 ‘3세 경영’을 주도하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의 2010년 행보를 위한 정기인사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8월 현대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기 시작한 정 부회장은 2000년 입사 1년만에 현대차의 이사, 2003년에는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사장을 거쳐 지난 2005년부터 기아차 사장을 맡아왔었다.

따라서 10년 만에 부회장 자리까지 꿰찬 그가 그룹 인사권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이번 인사과정에서 주목되는 변수다.

비록 추가 승진의 가능성은 낮지만 정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지위에 오를 기반을 이번 인사로 확실히 다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서거나 삼성전자 계열사 혹은 해외법인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구광모-계열사 합류, 조원태-승진 기대
차기 대권 경쟁에서 2010년 새롭게 ‘본 무대’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로는 LG그룹의 구광모 씨가 가장 먼저 꼽힌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아들인 광모 씨는 연말쯤 유학생활을 마친 후 그룹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에 참여할 계획으로 알려져 이번 인사에서 어떤 직위와 보직을 받게 될지가 분명한 화젯거리다.

현재 LG전자 과장인 그는 (주)LG 주식을 차곡차곡 매입하면서 구 회장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 이어 4대 주주로 올라있다.

따라서 LG그룹 안팎에서는 광모 씨가 승진하고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이 LG전자 최고경영자(CEO)를 맡는 안이 거론되고 있다.

1978년생인 광모 씨가 아직 그룹을 총괄하기에 상대적으로 젊어 그가 LG그룹을 본격 승계하기 전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이 과도기적으로 LG전자를 책임지는 형태라는 분석이다.

올 들어 ‘형제의 난’으로 큰 진통을 겪은 바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는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철완 그룹전략경영본부 부장의 임원 승진 여부가 핵심이다.

지난 8월 계열사(아시아나항공)에서 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박 부장은 박삼구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상무보다 세 살 적지만 직급은 2계단(상무보-상무) 차여서 상무보 승진이 예상된다.

한진그룹에선 조양호 회장의 맏딸 조현아(기내식기판사업본부장) 상무와 장남 조원태(여객사업본부장) 상무의 승진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조원태 상무는 이미 최고경영자(CEO) 수업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현아 상무도 지난 4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를 맡는 등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돌입했다.

특히나 이들 3세는 최근 그룹의 지주사인 정석기업의 주식을 각각 1.2%씩 취득하며 경영권 이양을 위한 준비작업에 나섰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같은 한진가(家)인 한진중공업에서는 조남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국 상무의 승진 가능성이 엿보인다.

최근 비자금 조성 의혹과 해외부동산 매입 등으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인 효성그룹에서는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등 3세들의 동반 승진에 시선이 몰리는 분위기다.

우선 장남 현준 씨가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격상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조석래 회장이 아직 현업에서 직접 뛰고 있지만 74세로 고령인 데다 전경련 회장으로 외부 활동이 많기 때문에 서서히 경영권 전환을 꾀하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또 현준 씨의 위치가 격상되면 자연스레 부사장과 전무를 각각 맡고 있는 현문·현상 씨도 사장급으로 한 단계 순차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밖에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부사장의 사장 승진 여부를 비롯해 일본 유학 중인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아들 남호 씨와 올 연말 공군 복무를 마치는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동관 씨의 향후 거취 역시 인사철을 전후해 주목할 만한 이슈로 꼽힌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