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만남 뒤에는 고도의 전략과 연출이 있다. 단지 당신만 모를 뿐.”

<관계의 비밀> 레오 마르틴 지음, 북하우스 펴냄

화사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길을 걷다가 손수건을 흘린다. 우연히 그 뒤로 걷던 남자가 그것을 줍는다. 하얀 손수건은 잘 다려져 있고, 연한 향기까지 배어 있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남자. 손수건에 묻은 흙먼지를 털면서 앞서 가버린 그녀를 쫓아가고, 둘은 그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는다. 1960년대만 해도 종종 있던 실화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그 칠칠하지 못한 듯한 여인네 중 일부는 사전에 유혹할 남자의 이동시간 및 경로를 파악한 뒤 그가 좋아할 만한 패션과 헤어스타일, 흰 손수건, 핸드백, 뾰족구두 등 장비 일습을 갖춰 도상훈련까지 마치고는 작전당일 거리에서 대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관계의 비밀>은 모두가 고민하는 ‘관계’의 작동원리와 기술을 알려주는 지침서다. 하지만 정작 흥미로운 것은 저자 레오 마르틴의 정체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법이라고 하여 심리학자나 사회학 교수인가 싶겠지만, 그는 독일 경찰의 전직 비밀요원이다.  이 책의 내용도 10년간 비밀 정보요원으로서 경험한 실화들과 정보요원 지침서에 수록된 다양한 기술들이란다.

그는 경찰 교육을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하고, 수많은 가명과 위장 신분으로 살아가는 비밀 정보요원에 발탁되었다. 그 후 10년간 독일 내국 담당 비밀요원으로 활약했다. 그가 담당한 특별임무는 범죄조직 내에 정보원을 확보하는 것.

전혀 모르는 적대적인 상대에게 접근해 마음을 사로잡고 상대가 범죄조직 소탕임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에 협력하도록 만드는, 매우 위험하고 가능성도 낮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칠기 짝이 없는 범법자들을 상대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아무리 까다로운 상대라도 최단 시간내 마음을 사로잡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비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의 의도대로 범죄자들은 그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고, 목숨을 걸고 결정적인 내부 정보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설득력’과 ‘신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의 일상이 비밀스런 첩보임무와는 거리가 멀더라도 레오 마르틴이 구사한 방법과 기술은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다. 그의 조언은 친구와의 우정 쌓기, 부부관계, 직장 내 인맥 만들기, 고객관리, 협상전략 등에서도 유용하다. 첩보소설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노파심이지만, 앞서 언급한 ‘흘린 손수건’ 전술처럼 좋은 목적으로만 이런 기법들이 쓰이길 바란다.

책에는 ‘흘린 손수건’과 연관된 내용도 있다. “전혀 모르던 사람과의 첫 만남은 두 사람의 앞으로 계속될 관계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첫 마디가 떨어지기 전에 두 사람은 서로를 탐색하며 은밀히 평가한다. 이런 평가에서 선입견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배경 지식을 갖춘 요원은 상대방의 상황에 맞춰 외모와 태도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 ‘우연한 만남’을 연출하라. 시간과 장소를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스포츠클럽이나 레스토랑, 카페, 출근길 등등.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에 상대방은 신비로운 느낌을 받는다.”

“인간관계의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은 서로 주고받은 질문들이다. 오고 간 물음들을 기록해두었다가 나중에 살펴보라. 자신과 상대의 심리가 그림처럼 환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언제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은지 하는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것도 있다. 모든 물음에는 그에 딱 맞는 최적의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