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국민연금은 개인의 노후를 국가가 보장해 준다는 개념아래 도입된 공적연금이다. 그러나 내 피같은 돈을 보험표로 냈는데 제대로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갈 수록 깊어지고 있다. 연금제도가 특정세대에만 유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시대상황을 보며 개선하고 수정해야 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은 성질 난 사람의 발길에 채이는 돌부리 같은 존재인 듯싶다. 안 그래도 성질이 잔뜩 나 있는데 그때마다 국민연금이 사람을 더 열 받게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2030’으로 대표되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서 특히 더 심한 것 같다. 국가가 뭔데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식으로 내 인생에 간섭하느냐는 것이 젊은이들의 정서인 듯하다. 하루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국가에 내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문제인식도 한몫한다. “내 인생 신경 쓰지 말고 국가 당신이나 제 앞가림 잘하세요”라는 반응이라고나 할까.

국민연금에 대해 상당수 국민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된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국민연금을 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급여율은 벌써 70%에서 47.5%로 떨어져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3월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2060년에 소진된다고 한다. 지금 열심히 보험료 내봤자 결국 연금 한 푼 못 받는 것 아닌가 하는 불만과 불안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때 1~2년도 아니고 30~40년 뒤를 내다보고 강제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라고 하니 볼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아이 적게 낳고,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는데 연금받을 노인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다 보니, 이러한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이야 내가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이 연금으로 돌려준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일반적인 정서인 듯싶다. 누구는 국민연금을 ‘폰지 게임’이라며 비아냥거리지 않는가?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열불이 나겠지만 말이다.

국가가 공적연금 가입을 강제하는 이유는 연초부터 우리나라를 달구었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통합운영과 관련된 논란만 봐도 명확하다. 우리 역사상 물질적인 측면에서 지금만큼 풍요를 누린 적이 없다. 이는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화 덕분이다. 이처럼 물질적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왔던 65세 이상 노인 상당수가 제대로 노후 준비를 못했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았음에도 노후빈곤에 노출될 비율이 높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노후 준비 목적의 적절한 제도가 없었고, 노후 준비 필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65세 이상 연령층은 국민연금이 늦게 도입되다 보니, 국민연금에 가입할 기회가 거의 없어 노후빈곤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젊었을 때 근로기간 동안 버는 수입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노후 준비를 소홀히 한 이유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잘 모르니 국가가 나서 젊었을 때부터 노후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 국민연금제도를 만든 이유다. 전문용어로 온정주의적(Paternalism)인 입장에서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돌봐준다는 개념하에 도입된 것이 공적연금이다. 선진국처럼 오래전에 국민연금이 도입되었더라면 선진국의 노인들처럼 많은 노인이 노후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이 최고라는 오명도 씻으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노후에 간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할지라도 그 자체로 ‘내 피 같은 돈을 보험료로 냈는데 제대로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기금이 종국에는 완전 소진된다는데 원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인지, 실질가치는 유지되는 것인지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가 설명하는 것처럼 나이 들어 연금으로 돌려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정부에 따르면 보험료를 열심히 내면 월 70~80만원, 또는 100만원 이상도 받는다는데,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30~40년 뒤의 돈 100만원은 그야말로 미미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대목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사적연금과 달리 실질가치를 보장해준다는 점 말이다. 사적연금에서 월 100만원을 연금으로 지급한다고 할 경우 통상 실질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명목가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에 국민연금은 실질가치가 보장돼 연금으로 받는 월 100만원이 현재 시점의 월 100만원과 같다. 물가상승률에 따라 명목가치로는 연금액이 월 300만원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떡이 하나 더 있다. 근로기간 동안의 경제성장률이 자신이 낸 보험료에 이자로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시대 상황에 맞게 국민연금 제도 개선도 지속돼야

국민연금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여러 세대가 어느 정도까지는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민간부문에서 운영하는 그 어떤 제도보다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제조건은 국민연금제도가 어느 특정한 세대에만 유리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시대상황을 보아가며 개선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시대상황 변화에 맞게 제도를 제대로 못 고치면 결국 원금도 제대로 못 받는 것 아니냐고. 국가가 운영한다고 해서 이런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연금제도를 방만하게 운영해 지금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와 같은 나라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적연금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이들 나라도 연금은 계속 지급하고 있다. 연금제도를 제대로 못 고친 상황에서 연금지급이 계속되다 보니, 국가경제 전반에 무리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반면 우리가 연금제도 운영과 관련해 모법으로 삼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같은 나라는 노인이 많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져도 연금제도가 큰 탈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이미 제도를 고쳐놓았다. 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2040~2050년대에도 작동 가능할 연금제도로 이미 개선해놓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벌써 많은 조치를 취했다. 국민의 반발이 있기는 했으나, 필요할 때마다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나가고 있다. 1988년에 급여율 70%로 도입한 제도를 2028년까지 40%로 낮추는 제도 개혁도 이미 단행했다. 연금을 처음 받기 시작하는 나이도 60세(2013년부터는 61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질 예정이다. 수급연령을 늦춘 것은 연금을 덜 주려는 것이 아니라 평균수명이 늘어나 연금받는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국민연금제도 도입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가 이미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 훨씬 안정적인 연금제도로 고쳐놓았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힘들더라도 2007년 정부가 추진하다 실패했던 보험료 인상(현재 9%인 보험료를 10년에 걸쳐 12.9%까지 인상할 예정이었음) 조치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보험료 인상조치가 이뤄진다면, 2030 세대 역시 자기가 낸 것보다 실질가치 측면에서 연금을 더 받는 제도로 운영할 수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과실(혜택)이 2030세대의 연금액 산정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연금 받을까 못 받을까?’, ‘낸 것만큼은 연금을 받을까?’ 하는 ‘기우’와 같은 걱정을 하기보다는 국민연금의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뒤, 모든 세대(노인세대, 젊은 세대,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까지 포함)가 국민연금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보다 앞서가는 선진국들이 하는 만큼의 사회·경제적 변화 추이에 부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개선하면 된다. 이러한 제도보완의 필요성은 공적연금이든 민간연금이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강력한 연금 재정 안정화 조치를 취한 덕분에 적어도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OECD 회원국 중 모범적인 연금제도 운용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보험료를 더 부담하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혁을 적기에 실행에 옮긴다면 2030세대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도 연금 받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연금전문가들이 가급적 빨리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져 적절한 보험료 인상 스케줄에 따라 보험료를 현재의 9%에서 13%로 4%포인트 정도 인상한다면 낸 것보다 연금을 적게 받을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단언컨대 적절한 제도 보완만 이루어진다면 2030세대도 낸 보험료보다 많은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엔 당장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을지라도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을 경우, 2030 이후 세대, 그러니까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지게 돼 이들 세대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보험료 인상이라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자는 것일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금융상품보다도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 국가가 이윤을 남기지 않고 국민연금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 경제성장률과 인구증가율만큼의 수익을 덧붙여 주기 때문이다. 60세 이상의 연령층에서도 정부 말 듣지 않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나는 헛똑똑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