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우리는 전혀 책임이 없습니다! 기업이 위기 시 저지르는 본능적 실수들이다. 문제가 없다면 위기가 발생할 리 없다. 책임이 없는 기업에 억지로 덮어씌우려는 이해관계자들도 없다. 초기에 빨리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책임 범위를 정하자.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자. 여론의 법정에서 일단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경영진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질문이 있다. “우리한테 책임이 있는 겁니까? 이 상황을 지금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게 맞나요?” 아주 드물게 자사에는 아무 책임도 없는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위기라 칭하지는 않는다. 책임이 없다는 내용을 그대로 솔직하게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전달하면 극심한 위기로까지 번지는 상황은 그리 흔치 않다.

문제는 ‘일부’ 책임이 있는 경우다. 또한 어떻게 보면 책임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경우다. 대부분 이런 경우, 책임의 한도나 범위는 추후 법정에서 판정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론의 법정에서 해당 기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입장(position)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여론의 법정에서는 “일부 책임이 있으나…” “어떻게 보면 저희만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보시는 분에 따라 저희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보실 수도 있겠으나…” 같은 입장 표명은 그리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 정확하게 자사의 책임 범위를 확정해 강력하고 단호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스스로 자신의 책임을 확정해 그에 대한 개선이나 해결책을 함께 커뮤니케이션하는 전략이다. 많은 기업이 위기 발생 시 침묵하기 때문에 초기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언론이나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여타 이해관계자에게 그냥 맡겨버린다. 마치 “알아서 이번 문제에 대해 정의를 내려주세요!” 하는 식이다. 당연히 자사가 원하지 않는 정의를 선물받는다.

책임에 대한 확정도 마찬가지다. 문제에 대한 자의적 정의를 기반으로 비판해 오는 언론이나 여타 이해관계자들에게 회사 스스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축소하려 하면 문제다. 우리 회사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건에 대해 언론과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오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당연히 문제를 정의한 이해관계자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있고, 이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데 막상 이 회사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은 기업의 위기관리를 매우 힘들게 한다.

위기 시에는 기업 스스로 문제의 핵심을 적극적으로 확정해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그것도 빨리 해야 어젠다와 프레임을 설정할 수 있다. 선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번 A라는 건은 B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정의를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심어주는 전략이 중요하다. 그 후 적극적으로 책임 범위를 확정해 선제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자.

문제의 핵심인 B를 해결하고 유사한 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는 C라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문제와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에는 큰 다름이 있다. 일단 인정하게 되면 사후 책임의 디테일한 수준과 범위에 대해 여론의 법정에서는 일부 관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위기 시 기업은 자신의 ‘태도’를 커뮤니케이션하면 일단 성공한다.

기업 위기관리의 많은 실패 사례들을 보면 위기 발생 직후 해당 기업의 태도에서 많은 문제가 발견되고, 이런 문제들이 그대로 묵시적으로 커뮤니케이션된다. 위기 발생 이후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과 논의가 내부적으로 길어질수록 위기관리 성공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책임소재에 대한 논의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범위와 수준을 빨리 확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안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라는 의미다.

위기 시에는 많은 전문가가 자문 등으로 투입된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문단의 경우, 책임 소재를 최소화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기 쉽다. 어떻게든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그 근거들을 체계화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이는 위기관리 초기에 진행돼야 할 업무라기보다는 중반 이후에 법정 판결을 준비하며 진행해야 할 업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따져가며 여론의 법정에서 일단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