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엄마의 반란 | 新 문화주체

문화계에 ‘중년 아줌마’ 돌풍이 거세다. 그동안 문화 소비의 변방으로 인식되던 50대 중년 여성들이 영화나 공연을 주체적으로 관람하고 음악 CD를 구매하는 소비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오던 엄마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장년층으로 편입되면서 발전이나 개발 논리보다는 그들의 자기정체성을 찾기 위한 문화적 모색을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발맞춰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국내 음반시장에선 일대 이변이 일어났다. 만 63세를 맞은 가수 조용필이 10년 만에 내놓은 앨범 ‘헬로(Hello)’가 발매 2주 만에 11만 장을 돌파하더니, 지난 6월까지 총 20여만 장이 넘게 팔려 나갔다. 음반 시장이 디지털로 재편되면서 CD 앨범은 1만 장만 팔려도 ‘대박’으로 꼽힌다.

음반 시장이 죽었다는 요즘, 찍어내기 바쁘게 품절되는 초유의 ‘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조용필의 새 앨범을 올 상반기 ‘빅히트 상품’으로 만든 건 조용필과 동시대를 호흡했던 중장년층 소비자들, 그중에서도 50대 이상 아줌마들이었다. 세월을 잊은 듯한 그의 파워풀한 보이스와 환상적인 무대는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과 미지의 세계, 이터널리 등 조용필 3대 팬클럽의 주축은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5060세대다. 중년 여성들이 8~9할쯤 돼 보인다. ‘용필 오빠’의 귀환은 곧 ‘오빠 부대’의 귀환을 알린 셈이었다.

 

대중문화계에 새바람 ‘중년 아줌마 파워’

음반·영화·공연 등 대중문화계에 50대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대중문화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계는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이 신(新)문화주체로 떠올랐다.

CJ E&M이 지난해 공개한 세대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소비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64세 중장년층이 문화 콘텐츠 구매에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공연 관람·음반 구매 등 여가에 월 50만원 이상을 소비하는 시니어는 26%였다. 콘서트 관람의 경우 1년에 1편 이상 본 50~64세의 비율이 22.1%로 10~30대(15.6)보다 높았다. 외국 원작의 뮤지컬 내한공연 관람률도 50~64세가 36%로 전체 세대 평균인 29%를 뛰어넘었다.

이 밖에 음반을 구매하는 비율 역시 50~64세가 25%로 전체 세대 평균 19%를 웃돌았다. 음반 중에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콜래보레이션 앨범과 기획 음반을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액티브 시니어 중에서도 소비력을 갖춘 50대 아줌마들의 파워가 만만찮다. 가요계에서는 ‘돌아온 가왕(歌王)’ 조용필 열풍이 50대 아줌마의 힘을 입증하고 있다.

온라인 음반 판매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조용필의 19집 정규앨범 ‘헬로(Hello)’는 지난 4월 23일 출시 당일에만 2000장 넘는 판매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1분에 1.4개씩 팔려 나간 셈이다. 다음 날 이 앨범은 예스24 주간음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선정되면서 그 열풍을 실감케 했다. 앨범 발매 첫날 1000장이 넘게 팔린 것은 3년 전 아이돌그룹 JYJ의 ‘더 비기닝(The Beginning)’ 이후 처음이라고 예스24는 설명했다.

‘조용필 열풍’을 주도하는 팬층은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들이다. 앨범 구매자를 살펴보면 40대 여성(23.3%)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김혜란 예스24 가요 담당 MD는 “조용필의 가장 열렬한 팬층이라 할 만한 40대를 주축으로 한 중년 여성들이 음반 판매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도 40대 이상 중년 관객은 10년 전과 비교해 10배 넘게 늘어났다. 1200만 관객을 기록한 ‘7번방의 선물’의 경우 40대 이상이 전체 예매의 40%를 차지했을 정도다.

영화계에서는 “관객 500만 이후의 흥행은 중장년층 관객에 달려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특히 예술영화에 50대 여성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칸영화제 수상작인 ‘아무르’처럼 중년 여성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라면 넉 달 넘게 장기 상영되기도 한다. 씨네큐브, CGV무비꼴라쥬 등 예술영화전용관은 중년 여성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평소 예술영화를 즐긴다는 주부 김명희 씨(57세)는 “한 달에 서너 번은 친구들과 만나 아침 일찍 조조영화를 보거나, 브런치를 즐긴 뒤 오후 1, 2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감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고아라 씨네큐브 홍보담당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한 회원은 주로 30대이지만 실제 극장에서 체감하기엔 40~50대 여성이 가장 많은데 멀티플렉스에 비해 낮 시간대 객석점유율이 특히 높은 것도 중년 여성들 덕분”이라며 “오전의 조조관객과 오후 1,2시대 관객이 유독 많고 점심 시간대가 한산한 이유는 브런치와 영화를 함께 즐기려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연관 있다”고 설명했다.

CGV무비꼴라쥬는 관객과 영화 평론가 및 감독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마톡’, 작품 속 예술 언어를 파헤치는 ‘아트톡’, 토론 형식으로 이뤄지는 ‘스페셜톡’ 등과 같은 다양한 톡(TALK)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큐레이터 제도에 착안해 ‘무비꼴라쥬 큐레이터’를 도입, 시니어 및 중년 여성 관객들에게 영화 해설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에 따라 요즘 극장가에서는 중장년층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4월 개봉을 앞둔 음악영화 ‘송 포 유’ 시사회에서는 세시봉 미니콘서트가 함께 열렸다. 이 영화의 배급사 뉴는 시사회에 40~50대 관객 4000여 명을 무료로 초대했다. 콘서트에서 가수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이 들려주는 추억의 팝송은 참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국내 최대 복합상영관 CGV는 아예 45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시니어 전용 멤버십 프로그램 ‘노블레스’를 내놨다.

시사회 초대권과 무료 쿠폰북 등이 포함된 시니어 맞춤형 혜택을 콘셉트로 정했다. CGV는 “CGV 멤버십 회원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체 연령대 중 45세 이상 시니어 관객이 2011년 14.8%에서 2012년 17.0%까지 늘어났고 신규 관객 비중으로만 봤을 때도 시니어 관객이 2011년 17.1%에서 2012년 18.5%로 높아졌다”며 “특히 CGV 노블레스 프로그램을 론칭한 이후부터 시니어 관객 비중이 눈에 띄는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CGV목동의 경우 무비꼴라쥬와 손잡고 40~50대 주부 고객을 대상으로 브런치를 즐기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브런치 시네마’를 개최해오고 있는데, 최근 높은 인기에 힘입어 월 3회로 확대했다. 한석진 CJ CGV 마케팅기획팀 과장은 “CGV는 영화관의 재미를 다시 찾게 된 시니어 관객들을 위해 CGV 노블레스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더욱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하면 20~30대 여성들이 주 관객이었는데, 이 역시 요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40~50대 관객의 티켓 파워가 커지고 있는 것. 중장년 여성들은 주로 낮 시간대에 열리는 동창회, 계모임 등을 활용해 뮤지컬을 관람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파워는 얼마 전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 ‘레베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MK뮤지컬컴퍼니에 따르면 레베카 관객 중 40~50대가 20%에 달했고 낮 공연은 30%까지 올라갔다.

지난 5월 개막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공연을 없앴다. 대신 낮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40~0대 중장년 주부 관객을 잡기 위해 낮 3시 마티네(평일 낮) 공연을 마련했다. 20인 이상 중장년층 단체 관객이 편안하게 뮤지컬을 즐길 수 있도록 공연 시간에 맞춰 무료로 픽업하는 ‘문화 콜버스(Call-Bus)’ 서비스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인터넷 예매가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관객을 위해선 전화로 원스톱 예매 서비스가 가능한 ‘문화 콜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모녀 마케팅도 나타났다.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뮤지컬 주요 소비층인 20~30대 여성이 어머니와 같이 공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모녀가 같이 오면 티켓 가격을 30% 할인해줬다.

 

 

 

중년 여성들, 가슴에 묻어둔 문화갈증 분출

2011년 MBC TV ‘놀러와’ 추석특집 코너를 통해 다시 등장한 7080문화의 상징 ‘세시봉’ 특집은 이 같은 ‘중년 아줌마 돌풍’의 단초를 제공한 원조 격으로 꼽힌다. 조영남을 비롯해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 참여한 이 토크 콘서트는 50대 중년층에게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잠깐 일고 지나가는 ‘찻잔 속의 태풍’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들의 공연은 연이어 매진됐고 대중은 이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통기타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낙원상가의 통기타 판매까지 급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제2차 세시봉 열풍’이 시작된 것이었다.

“세시봉 콘서트를 보면서 젊은 날의 추억이 생각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화장품 하나 사면서도 몇 번을 따져볼 정도로 궁상을 떨었지만 앞으로는 내 삶에 좋은 추억을 선물하며 살고 싶다”, “남편 뒷바라지하고 애들 키우다 보니 어느 날 터미네이터가 돼버렸다”, “아이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나니 인생 뭐 있나 싶더라. 치맛바람 날리며 과외공부 시키고 같이 밤잠 설쳐가면서 원하던 대학에 보내놨더니 엄마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남편도 애들도 만날 늦게 들어와서 집 지키는 강아지 신세였는데…”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살았던 중년 여성들의 한탄이다.

결국 이들이 주도적인 대중문화 소비층으로 나서게 된 것은 오랫동안 내재돼 있던 문화갈증이 분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이 정의하는 50대 중장년층 여성들은 이렇다. 이전 세대에 비해 문화의식이 높고 영상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많다. 따라서 과거처럼 단순히 TV 드라마나 비디오에 만족하지 못하고 극장과 공연장을 찾는 등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소극적 의미에서의 문화 소비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적극적·능동적 자세로 문화 창조자로 거듭나고 있는 중장년층. 이들은 문화생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자가출판시스템 ‘퍼플(PubPle)’에서 활동하는 자가출판 작가는 약 2300명. 현재 등록해서 출판하고 있는 사람들의 25% 정도가 50대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여성도 40~50대 비중이 높다. 2011년 12월 퍼플 서비스 오픈 이후 중년의 신진 작가 참여도는 매 분기 증가하고 있다. 매월 평균 등록작 200여 편 중에 30% 이상의 작품들이 중년 신진작가들의 작품이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의 시민참여 프로젝트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과 같이 40~50대 주부들이 연극단을 구성, 직접 연극 공연을 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문화적으로 성숙하면서도 세련된 중장년층의 성향이 문화시장에서 적극적 능동적 참여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화계에서는 중년 여성들의 파워가 계속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장년층의 문화 소비 욕구를 부추기는 건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이라며 “추억을 반추(反芻)해보는, 단순히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즐거움을 주는 지금의 콘텐츠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과 입장의 문화상품 개발과 함께 문화예술 활동 참여의 장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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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엄마들 위한 오감만족 나들이

[영화]

◆마지막 4중주

25년을 함께한 현악4중주단, 피터(크리스토퍼 워켄),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줄리엣(캐서린 키너), 대니얼(마크 아이반니)의 해묵은 갈등이 불거진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섬세하게 다루면서 삶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음악적 은유를 통해 인생의 모든 문제를 깊이 있게 통찰한 작품.

감독 야론 질버먼/ 장르 드라마, 코미디/ 상영시간 106분

[뮤지컬]

◆넌센스

1991년 초연 이후 22년간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빼어난 웃음코드를 바탕으로 5명의 수녀들만이 등장해 기상천외한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2013년 공연은 그동안 작품을 지켜온 배우들과 새롭게 합류한 실력파 신인들이 함께 이끌어가는 무대.

8월 18일까지 / 한양레퍼토리씨어터 / 4만원 / 02-764-6460

[연극]

◆선녀씨 이야기

제30회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 및 연출상·희곡상·연기대상·연기상 수상 등 5관왕에 빛나는 검증된 작품. 가족 간의 소통하는 방법과 사랑하는 방법·미워하는 방법도 모두 서툰, 서툴기에 더욱 진솔한 힐링 연극이다.

9월 15일까지 / 대학로뮤지컬센터 중극장 / 4만~5만원 / 1599-0701

[클래식]

◆2013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V - CONCERT Ⅰ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로 2013년, 5회째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10대 때부터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한 장한나가 연주 경험과 음악적 영감을 젊은 음악가들 및 청중과 함께 나눈다. 말러교향곡 1번,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부터 슈만 교항곡 4번, 레스피기 ‘로마의 축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주앙’ 등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으로만 구성.

8월 17일 /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 3만~5만원 / 031-783-8000

[음반]

◆나윤선 ‘Lento’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재즈 보컬인 나윤선의 새 정규 음반. 전작에서보다 늘어난 자작곡들과 이전 음반 수록곡 편곡 버전 등을 통해 보다 넓고 깊어진 나윤선의 음악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앨범에는 KDB금융그룹 TV광고음악으로 쓰였던 ‘아리랑’이 수록돼 있다. 그녀의 음악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중년 여성의 감성을 자극할 아름다운 선율이 담겨있다.

◆최백호 ‘다시 길 위에서’

최백호 12년 만의 새 앨범. 신곡 10곡을 포함해 모두 11곡이 실린 이번 앨범은 팝 재즈, 누에보 탱고, 라틴, 집시 스윙, 로맨틱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 최백호의 놀랄 만한 음악적 변신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어느 순간순간에 꺼내봤으면 싶은 ‘마음의 쉼’ 같은 그의 목소리는 한 편의 시와 같은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