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당신의 주말을 깨워라-만들어라

무언가 ‘만드는 법’을 배우면 좋은 점. 그때그때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집들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캘리그라피 수업에서 배운 글씨로 쓴 초대장을 보내고, 집 안 곳곳을 꽃꽂이로 장식한 다음, 사찰음식 강좌에서 배운 채계장(채식육계장)을 대접해보자. 팔방미인 소리 듣는 건 시간문제다. 물론 이 중 한 가지만 할 줄 안다고 해도 생색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악필인 그대.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쉽게 말하면, 예쁘게 손 글씨 쓰는 법이다. 글씨 쓸 일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 자신만의 손 글씨를 갖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단순히 취미로 배우기 시작해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을 때는 영화 타이틀, 북커버, CI, BI, 홈페이지 작업도 할 수 있다.

캘리그라피 전문 학원인 ‘모노디’의 윤상필 실장은 “취미로 만든 부채나 액세서리에 글씨를 새겨 넣을 수도 있고, 마치 예술작품처럼 개별 전시회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면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포트폴리오를 올려 기업체로부터 CI나 BI 의뢰를 받는 수강생도 있다”고 했다. 수강료는 주 1회 세 시간 기준, 한 달에 30만원 선이다. 무턱대고 등록하기 부담스럽다면, 공개강좌로 맛보기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시로 진행되는 공개강좌를 이용하면 2시간 기준, 5000원만 내면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윤 실장에 따르면 ‘생초보’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르려면 적어도 2개월이 소요된다.

캘리그라피는 붓과 먹을 이용해서 배운다. 하지만 일반 서예와는 다르다. 윤 실장은 “일반 서예가 고정 서체라면 캘리그라피는 자신만의 감성이 담긴 자유로운 서체”라고 설명했다.

평일, 전쟁 같았던 일과를 뒤로하고 평정을 찾고 싶다면, 꽃꽂이도 추천할 만하다. 성북동에 사는 김영란(36세) 씨는 “워낙 산만하고 차분하지 못해 평소 화초 한 포기도 제대로 못 키웠는데 원예를 배우면서 성격이 차분해지고 마음의 평정까지 찾았다”고 했다. 김 씨는 “특히 매번 결과물을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꽃꽂이의 큰 장점”이라면서 “딱히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도 집 안 분위기가 화사해진다”고 했다.

이영호 종로 풀잎문화센터 원장은 “취미로 꽃꽂이를 배우다가 꽃집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원예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다”면서 “보통 다니기 시작하면 1년 이상씩 다닐 정도로 매력이 있는 취미”라고 했다. 종로 풀잎문화센터 꽃꽂이 수강비용은 초급반 15회 기준, 재료비 포함 20만원이다. 초급반을 마치면 중급, 고급, 사범반 등으로 올라가는데, “꽃꽂이 좀 한다”고 하려면 고급반 이상 돼야 한다. 사범반 이상 되면 자격증 시험도 볼 수 있다.

지친 업무가 왠지 건강까지 해치는 것 같다면, 사찰음식 만들기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사찰음식은 채식 위주의 담백한 식단으로 대표적인 한국의 전통 웰빙음식이다. 식물성 지방과 섬유소, 각종 약용 성분이 풍부하고 열량이 낮아 성인병 예방이나 체중 조절에 좋다. 최근 건강식이 인기를 끌면서 사찰음식을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 대학의 평생교육원,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문화센터 등에서 사찰음식 전문가를 초빙해 강좌를 마련하기도 한다. 커리큘럼과 비용은 기관별로 다르다. 수시로 취미반을 운영하는 동국대학교 사찰음식연구소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 수업을 14회 진행하며, 비용은 78만원이다.

做 기자체험

피부 트러블 잦은 당신이 꼭 배워야 할 것

뾰루지가 없어지길 기대하며 헴프씨드 오일을 정성스레 부었다(사진: 박재성 기자).

피부에 대한 ‘근자감’이 화근이었다. 왼쪽 입술 밑에 거대한 뾰루지가 났다. 간만에 만난 친구가 한마디 했다. “삼십 줄 넘어서 피부 관리 안 하는 건 죄악”이라고. 그러면서 귀띔했다. “천연화장품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는데 피부 트러블이 줄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배워보기로 했다. 천연화장품 만드는 방법.

토요일 오후,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리즈솝’을 찾았다. 리즈솝은 천연비누를 비롯해 화장품, 양초를 만드는 곳이다. 때마침 ‘허브연고’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허브연고는 초보자들이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종목. 게다가 뾰루지에도 효과가 있다니, 각 잡고 동참하기로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연고에는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어요. 천연연고는 이 성분 대신 식물성 오일을 넣어서 상처를 치료합니다.” 변민숙 리즈솝 대표가 헴프씨드 오일과 달맞이 오일을 꺼내며 말했다. 자그마한 비커에 두 가지 오일을 붓고 그 속에 소량의 밀랍을 담갔다. 밀랍은 빈 벌집을 끓인 후 굳혀 만든다. “그런 다음 밀랍과 오일을 적당한 온도에서 녹입니다. 오일과 밀랍의 배율은 8:2 정도로 맞추세요.” 5분이 채 안 돼서 밀랍이 녹았다. “여기에다 라벤더를 소량 넣습니다. 라벤더는 상처 치유에 효과가 좋습니다. 효과 때문에 첨가하는 거지만, 향까지 더해 주는 셈이죠.” 라벤더 향을 첨가한 후 비커에 담긴 용액을 용기에 담았다. 20분 후, 완전히 굳으면서 연고가 완성됐다. 간단했다. 완성된 허브연고를 득달같이 뾰루지에 발랐다. 오른쪽 종아리 모기 물린 데도 발랐다. 왠지 진정되는 듯한 느낌.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저도 천식 때문에 피부가 악건성으로 변했었어요. 극도로 민감해져 트러블도 잦았죠. 게다가 아이들도 아토피로 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천연화장품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고, 공방까지 차린 겁니다.”

리즈솝은 아주 작은 공방이다. 그래서 수업은 대부분 일대일로 이뤄진다. 커리큘럼은 취미반, 단과반, 전문자격증반으로 나뉜다. 이 중 비누기초, 화장품기초 단과반이 가장 인기가 많다. 수강생들은 직장인과 주부, 그리고 가족단위까지 다양하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배우러 오는 남성 수강생도 꽤 있단다. 수강료는 2시간 기준, 3회(6시간) 수업에 15만~20만원 선이다.

천연화장품은 관리가 까다롭다. 첨가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여름 같은 경우, 상온 보관 시 3개월 지나면 상한다. 때로는 곰팡이도 핀다. 만드는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만들어 쓰는 이유가 뭘까. “재료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큽니다. 얼굴에 바르는 성분을 직접 골라서 넣는 거잖아요. 건강하지 않은 피부는 색소와 방부제에 민감한데, 천연화장품에는 첨가물이 전혀 없어 안심할 수 있으니까요.” 친환경적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일반 화장품은 폐기할 경우 분해가 되지 않지만, 천연화장품은 그야말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공방에서는 립밤, 로션, 크림뿐만 아니라 비비크림, 선크림은 물론 파우더까지 직접 만들 수 있다. 변 대표는 “재료가 준비되고,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집에서 혼자 만들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레시피대로 하더라도 결과물이 좋지 않을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직접 와서 배우는 게 좋다”고 했다.

 

수강생인터뷰 / 이한나(29세) 웨딩플래너

“직접 만든 비누 쓰니 새집증후군 없어지던데요”

친구에게 천연비누를 선물 받고난 후부터 천연화장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번 배워보고 싶었단다. “그때는 막연히 생각만 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서 생활하면서 얼굴에 알레르기가 생기더라고요. 원인은 잘 모르겠는데 새집증후군 같았어요.” 리즈솝에서 ‘비누만들기 취미반’을 2주째 수강하고 있는 이한나 씨. 그는 “나뿐만 아니라 신랑 피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더라”면서 “얼굴에 닿는 모든 걸 순한 걸로 바꿔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비누를 만들어 쓰니 알레르기가 확연히 줄었다. “숙성 비누 같은 경우 꼬박 한 시간을 손으로 저어서 만들어야 해서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비누에 기포가 하나도 없고 밀도가 굉장히 높아서 보습력도 뛰어나더라고요. 신랑은 로션도 따로 안 바를 정도죠.”

이 씨는 친구들에게도 화장품 만들기 강좌를 추천할 계획이다. 그는 “직접 만드니 믿을 수 있고 내용물이 정직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면서 “곧 생길 아이를 위해서라도 배워놓길 잘했다”고 했다. “여기에 수강할 때마다 직접 만든 화장품이 생기는 건 덤이에요. 제가 쓰는 것도 좋지만 선물도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