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한우가 삼겹살 가격에 팔리고 있다. 가격이 낮아졌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한우를 외면하고 있다. 불황이 가장 큰 이유다. 한우가 안 팔리니 당연히 한우농가도 어렵다. 최근 사룟값 인상과 사육두수의 증가가 한우농가에 적자를 안겨주고 있다. 게다가 유통구조의 복잡함은 한우 가격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수입육에 치이고 불황에 치이고

ⓒ박재성 기자

한우 가격이 ‘금값’에 버금가던 때가 있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한우를 먹는 날은 점심을 굶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한우’는 고급스런 식재료에 속했다. 그랬던 한우가 최근에는 ‘삼겹살 가격’과 비슷할 정도로 싼값에 판매되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최근 한우 1등급 등심이 정상판매가보다 20~40%가량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 암소 등심의 경우 100g 가격이 최저 3240원에 구입이 가능할 정도다. 등심 정상가격은 약 6800~6900원 선이다.

 먹거리 수요 높은 바캉스 시즌도 무색하게 만든 ‘불황’

바캉스 시즌을 맞아 할인행사를 진행하면서 1차 할인을 적용하면 정상가보다 20% 저렴한 5400원에 구입할 수 있고 여기에 BC, 신한, 국민카드로 결제 시 40%의 할인율을 적용하면 3000원대의 가격이 나온다.

이런 한우 가격은 이 마트에서 판매 중인 프리미엄급 돼지고기 가격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현재 롯데마트에서 판매되는 ‘부성목돈’, ‘매실포크’, ‘벌침 맞은 돼지’ 등 프리미엄급 삼겹살의 100g 가격이 약 3500원 선이기 때문이다. 같은 중량의 일반 돼지고기 가격은 1950원으로 약 1000원 차이가 난다.

바캉스 극성수기인 7월 말부터 차츰 한우와 삼겹살을 비롯한 구이용 고기들의 판매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한우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수입육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질 좋은 수입육을 구입하려는 수요는 여전히 많긴 하지만 매출은 예년에 비해 떨어져 있다.

‘불황’이 가장 큰 요인이다. 경기가 어렵다는 인식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웰빙 바람으로 인한 고기수요 감소, 수입육의 물량 증가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트 관계자는 “한우 고기 가격 자체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매출 신장률이 좋을 수 없다”며 “예년 같으면 바캉스 시즌을 맞아 먹거리 수요가 늘면서 캠핑족과 여행객들이 구이용 고기를 많이 찾기 때문에 매출이 자연스럽게 증가하는데 올해는 판매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한우농가 시름은 갈수록 늘어… 줄줄이 폐업 위기

문제는 한우 고기가 이렇게 싸게 팔리고 있음에도 소비가 크게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한우농가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시장에서 고기가 저렴하게 판매되면 자연스럽게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엔 한우 고기 가격이 저렴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늘지 않고 오히려  한우 자체 가격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축산물 도매시장 한우 경락가격 정보에 따르면 1등급 암소 한우의 도매가격은 kg당 1만1914원(7월 31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1%가 떨어졌다.

한우가격이 떨어진 것은 최근 1년 새 사룟값이 20%가량 오르면서 원가 압박에 시달리다 폐업하는 축산농가가 늘어난 것이 주 원인 중 하나다. 전국한우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50두 미만의 중소농은 13만7000가구였는데 올해 들어 11만700가구로 줄었다.

경기침체하에 쇠고기 수입과 한우 도축두수 증가로 한우농가의 마리당 평균 수취가격이 2/4분기 415만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8% 하락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에서 사육 중인 한우는 모두 306만 마리로 정부가 예상하는 적정 수준인 260만 마리보다 17.7%나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쇠고기 수입과 한우 도축두수가 증가한 상태에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농가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한우농가들은 지난달 31일 음성군 소재 농협 축산물공판장에서 궐기대회를 가졌다. 이날 한우농가들은 한우 사육두수 증가로 인한 한우 공급량의 증가와 FTA로 인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증가함으로써 한우가격 폭락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우가격 안정을 위해서 단기적으로 정부의 암소수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들은 정부 측에 한우암소 수매실시와 FTA 피해보전 기준개선을 담은 요구를 전하고 농협 측에 출하예약제 개선과 사룟값 인하를 촉구했다. 그 외에 한우농가 주도의 미경산우 비육지원사업, 농가 자가도축장려금 지원, 송아지 생산안정제 정상화, 한우농가부채 원금상환 연장 등 총 11개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한우협회는 정부와 농협 측을 상대로 음성군 축산물공판장에서 장시간 협상을 벌인 끝에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협상에서 양측은 30개월령 이상 한우 출하예약물량 우선 배정, 음성 공판장의 도매물량 증대를 통한 한우가격 지지, 농협의 한우 소비촉진자금 680억원 지원 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우협회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료 가격 인하는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