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도 말을 한다. 意識과 衣式, 儀式은 서로 통한다. 문질빈빈의 의상철학

 옷차림도 전략이다. 스티븐 잡스를 떠올리면 이 이야기가 과장은 아닌 듯하다. 정장차림의 다른 CEO와 달리 검정 터틀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자연스럽게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그의 모습은 애플의 또 다른 혁신을 대변하기도 했다. 옷차림을 통한 이미지 전략은 자신을 홍보하는 수단을 넘어 적극적 행동수정, 동기부여의 실천적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는 말이 있듯이 옷차림도 하나의 성공전략으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옷차림도 전략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관광진흥 확대회의에서 자신이 입고 나온 빨간색 재킷을 ‘투자 활성화 복(服)’이라 스스로 명명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무역투자 진흥회의에 이어 빨간색 옷을 연이어 입고 나왔음을 강조하면서 “우리 경제에 많은 열정을 우리가 불어넣어서 경제를 활력 있게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열정의 색깔인 빨간색을 입고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성공한 사람은 자신을 시대와 사물의 질서에 잘 맞춘 사람”이라 정의한 바 있다. 즉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해선 옷차림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찰스 핸디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관리자라면 경력을 관리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카리스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인상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포장하고 홍보하고 가치를 높이는 일은 점점 더 각자의 책임이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관심사와 문화에 맞게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옷차림을 통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이야기할 때 무격식의 대표주자로 퍼뜩 떠오르는 게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다. 하지만 그의 검정 터틀셔츠와 청바지는 무격식이 아니라 의도된 ‘고도의 드레스 코드’다. 루스 루빈스타인 미국 FIT 교수는  ‘성직자 같은 복장(clerical outfit)’이라고 해석한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항상 민주주의에 결부시키는데, 이런 철학에 따라 회사 멤버들 사이에서 튀기보다는 성직자처럼 조용히 이들을 아우르기 위해 검은 셔츠를 입는 것으로 설정한 드레스 코드”라는 것이다. 그의 자연스러운 PT가 수개월간의 피땀 어린 연습의 결과였듯 평범한 캐주얼 역시 고도로 계산된 드레스 코드였던 것이다.

옷차림은 이처럼 가치관, 철학, 결의를 한 번에 전달하는 고도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다. 흔히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하지만 뚝배기가 좋으면 장맛도 더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공자는 의식(意識)과 의식(衣式), 의식(儀式)은 서로 통하고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고대의 우임금을 가리켜 “의복은 검소하게 입으면서도 제사용 예복과 면류관 등에는 아름다움을 다했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비록 허례허식은 경계했지만 적절한 격식을 함께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며 균형론을 피력했다.

質勝文卽野 文勝質卽史 文質 彬彬然後君子(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 빈빈연후군자-옹야편-)

바탕이 겉꾸밈보다 두드러지면 거칠거나 촌스럽고, 겉꾸밈이 바탕보다 두드러지면 허례허식으로 사치스럽다. 文이란 학문이나 예악으로 용모나 동작을 우아하게 꾸미는 일을 말한다. 質이란 인간 본연의 바탕을 말한다. 史는 사관, 쓰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관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서 사건과 사람의 특성, 가치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꾸미다, 장식하다’를 나타내게 되었다. 文만 있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고상해 보이지만 가식적이고 꾸며낸 티가 나기 쉽다. 그래서 진실하지 못하고 허풍을 떠는 듯한 느낌을 준다. 質은 전혀 꾸미지 않은 소박함을 뜻한다. 그러나 소박함이 지나치면 거칠어 보인다. 文(꾸밈새)과 質(본바탕)이 알맞게 어우러져 빛나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질빈빈론에 반박하며 본질만을 강조한 이들이 공자 당대에도 꽤 존재했다. 대표적 인물이 극자성과 자상백자다. 본질주의자 극자성이 “군자는 본질만 중시할 뿐입니다. 구태여 꾸밀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자공은 “그대의 군자에 대한 설명이 답답하군요. 네 마리 말(馬)이 끄는 수레도 사람 혀(言)의 속도는 너무 빨라 따라가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말을 삼가십시오). 文이 質이고, 質이 文입니다. 예컨대 생각해보십시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이라도 털을 다 뽑아놓은 채 바탕인 날가죽만 본다면 개와 양의 가죽과 같을 뿐입니다”라고 반박한다.

마음이 중요하지, 구태여 격식은 불필요하다면서 공자에게 딴죽을 건 또 다른 이는 자상백자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는 자연스러운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제일이고, 감정은 그대로 본성을 따르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공자가 그를 찾아갔을 때, 백자는 의관을 갖추지 않은 채 그대로 맞이할 정도였다. 공자는 그의 품성은 인정했지만 격식 없음을 탓하며 “간략하다”고 평한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의상철학>에서 “물질세계는 그 배후에 놓인 정신적 질서가 눈에 보이게 드러난 것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정신적 존재라 해도 그 본질은 물질세계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의상이란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는 것이며, 우리 삶을 표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매체란 점에서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질빈빈론은 공자판 의상철학이라 할 수 있다.

문질빈빈론은 개인의 이미지 브랜딩뿐 아니라 조직의 이미지 브랜딩에도 적용된다. 얼마 전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소집에서 눈에 띈 점이 있었다. 기존의 입소행사와 달리 모든 선수가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신사’가 된 모습으로 입장을 했다. ‘원 팀 원 스피릿(One Team One Spirit)’으로 단합을 강조한 바 있는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의 위상을 되살린다는 명분으로 선수 전원에게 복장 규정(정장 착용)을 하달” 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의상을 통해 위상을 제고하는 ‘겉볼안’ 전략은 미국의 프로농구 구단에서도 성공적으로 시행 중이다. 미국 프로농구(NBA) 사무국은 2005년부터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구단과 관련한 일체의 활동을 할 때 정장을 갖춰 입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넥타이는 자유). 그 외에도 옷 밖으로 드러나는 목걸이, 소매 없는 티셔츠 등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2013년 2월, 시카고 불스의 센터인 요아킴 노아(Joakim Noah) 선수가 후드티에 스웨터 차림으로 벤치 대기 중, 드레스 코드 위반으로 퇴장명령을 받는 일이 발생한 적도 있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의 와이셔츠와 재킷을 빌려 입은 후에야 벤치로 복귀할 수 있었다. 경기장뿐 아니라 구단 주최 자선행사, 기자회견 등 일체의 부대행사에도 적용되는 단호한 드레스 코드 조치는 데이비드 스턴 현 NBA 총재가 2005년 발표한 것이다. 당시 선수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과적으로 선수와 관객에 대한 상호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고 지금까지 준수되고 있다.

의상을 통한 분위기 일신, 위상 제고는 기업에도 해당한다. 미국의 발레로에너지의 전 CEO였던 윌리엄 그리헤이가 UDS사를 병합한 후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드레스 코드 바꾸기였다. 그는 UDS에 찢어진 청바지와 티셔츠의 캐주얼 근무복 근무를 넥타이에 정장차림으로 바꾸도록 규정화했다. 옷차림이 프로다워야 행동도 프로다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벤처 1세대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도 의상철학을 강조하는 기업인이다. 그가 운영하는 조현정장학재단의 대학생들은 ‘한여름에도 반바지와 슬리퍼 착용’이 일체 금지된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와 신사복을 입었을 때의 행동거지가 달라지듯 “담겨지는 그릇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지론 때문이다.

미국 심리학의 원조 윌리엄 제임스는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고 말한 바 있다. ‘신사숙녀는 신사숙녀처럼 행동한다’는 일반적 논리다. 역으로 ‘신사숙녀처럼 옷 입고 행동하면 신사숙녀가 될 수 있다’도 가능하다. 공자판 의상철학인 ‘문질빈빈론’의 요체는 그런 점에서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넘어서 적극적 행동수정, 동기부여의 실천적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