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 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 윤동주 <눈>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가 발견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다.

발견? 창조? 뭘까. 그 개념부터 보자. 발견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때 갑자기 찾아내는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 대표적인 예다.
뉴턴이 살던 시대 이전에도 사과는 땅으로 떨어졌고 중력은 존재했다. 다만 그 현상이 중력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던 것뿐이다.

이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을 세상으로 드러내는 것을 발견이라고 한다.

반면 창조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창조는 신이 우주의 만물을 만들듯 처음으로 생긴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화기가 처음 나왔다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창조라고 한다.

문제는 발견이나 창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관찰이다. 관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결코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관찰을 강조하는 이유다. 때문에 필자는 그동안 시에서 시인들의 관찰 방법을 추출해 소개했다. 그렇다면 이제 관찰을 넘어 발견으로 가는 길과 창조로 가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우선 발견으로 가는 방법 중 관찰한 대상을 놓고 어떻게 생각을 해야 발견으로 나아가게 되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이는 창조적 상상력의 천재들이라고 하는 시인들이 어떻게 시를 창작하는지 그 방법을 필자가 도식화해 만들어낸 이론으로, 일종의 ‘발견을 위한 시인들의 생각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발견을 위한 생각법’이란 다른 말로 ‘통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찰이란 사물을 꿰뚫어보고 그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몰랐지만 사물 스스로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본질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낸다고 통찰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통찰은 발견을 위한 생각법에 닿아 있는 셈이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듯 ‘발견을 위한 시인들의 생각법’을 내 것으로 만들어 응용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세상 어느 사물이나 대상에서도 통찰이 가능하며 새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관찰한 사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그동안 필자가 성인시를 소개하면서 ‘기발한 발상의 시작은 의인화’라는 글로 전한 바 있다. 이때의 기발한 발상이 바로 ‘발견을 위한 생각하기’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애국시인 윤동주의 <눈>이라는 동시를 보자. 초등학교 2학년 쓰기 책에 나와 있는 이 동시는 눈이 내려 지붕과 길과 밭이 모두 하얗게 된 모습을 보고 눈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다. 눈이 이불이라는 것이다.

기존에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 새로운 가치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지붕, 길, 밭을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붕을 사람으로 만드니 추운 겨울에 이불이 필요하고, 마침 내린 눈이 따뜻한 이불로 생각된 것이다.

허황되다고? 눈 덮인 땅속은 바깥 온도보다 따뜻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돼 있다. 눈이 땅에 쌓이는 현상은 땅에게 이불의 기능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윤동주는 시인들의 시적 생각법으로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1930년대에 말이다. 의인화의 힘이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