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립스틱 하나를 샀더니 판매자가 유기농 성분의 로션 샘플을 건네며 한번 사용해보라고 권했다. ‘유기농’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오면서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샘플을 챙겨 가방 속에 넣고 집에 돌아와 유기농 성분 덕분에 더욱 싱그럽고 촉촉한 피부상태를 기대하며 꼼꼼하게 로션을 발랐다.

그런데 최근 이런 유기농화장품 다수가 유기농 표시위반은 물론 허위ㆍ과장광고 사례가 빈번하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산 24개, 수입 26개 등 시판 중인 유기농화장품 50개의 표시ㆍ광고 실태를 조사한 결과 70%에 이르는 35개 제품이 ‘화장품법’ 또는 ‘유기농화장품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입 유기농화장품은 26개 중 24개(92.3%)가 규정을 위반해 관리 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반 유형을 보면 유기농 원료 함량을 표시하지 않은 제품이 21개로 가장 많았고 유기농 함량이 높은 것으로 오인하도록 표시ㆍ광고한 제품이 11개, 이 외에 유기농 원료 함량이 95%에 미달하면서 제품명에 유기농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제품과, 유기농화장품 인정 기준에 미달하면서 유기농 제품으로 표시ㆍ광고한 제품이 각각 5건이었다.

이 같은 보도내용을 보면서 ‘유기농’이란 단어에 마냥 좋아라 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당시 바른 제품이 순수하게 100% 유기농 제품이었을지도 모르지만(샘플 화장품이라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진 못했다) 무지몽매함으로 ‘유기농’이란 단어에 무비판적으로 팔랑귀가 돼 촐싹거렸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실제 많은 소비자가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조차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또 기자처럼 ‘유기농’이라는 단어만 보고 화장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러나 유기농화장품은 천연화장품과는 확연히 차이점이 있다. 천연이나 유기농화장품은 식물성 원료를 사용하고 화학적 성분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유기농화장품은 원료 제조 시부터 유기농업으로 재배된 지역에서 유기농인증기관의 철저한 관리 아래 재배한 원료를 무공해 가공법으로 제조한 상품이다.

그런데 왜 소비자들은 혼란을 겪을까. 소비자원 측은 유기농화장품을 표방한 제품들이 버젓이 유통되는 것은 유기농 여부를 심사하고, 사후 관리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며 국내에 유기농화장품 인증기관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유기농화장품은 대부분 해외에서 통용되는 인증기관에서 인증마크를 부여받은 것들이다. 문제는 이 인증마크의 부여 기준이 기관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IFOAM, USDA, 영국토양협회 등 해외 기관 기준으론 유기농 원료 함량이 95% 이상 돼야만 하는데 국내 규정으로는 10%만 들어가도 유기농이란 단어를 쓸 수 있다.  업체들의 화장품 성분표시 광고 체계도 문제가 있다. 일부 제품들은 국내 유기농화장품 인정기준에 부적합함에도 광고나 제품 표시에 버젓이 유기농 원료 사용을 강조해 소비자들을 오인하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평소 꼼꼼하게 성분표시를 챙겨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마저도 소비자들은 번거롭고 복잡해 불편하다.  누구나 표시 광고나 성분표만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