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을 자처해온 한국은 LTE 전국망을 갖추는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 훨씬 빠른 속도로 LTE시대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와이브로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통신업체들과 소비자들에게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소비자 권익과 통신 단말∙장비업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안의 하나로 LTE-TDD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요즘들어 점점 커지고 있다.

'LTE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에 따르면 5월 현재 전세계적으로 LTE 사업자는 175개에서 2013년 말에는209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IDATE도 전세계 LTE 가입자 수가 연평균 102%씩 성장해 오는 2015년에는 약 4억 8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LTE 시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심축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전 세계 스마폰 판매량의 25%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으로, 7억 가입자를 보유한 차이나모바일(China Mobile)이 LTE 서비스에 본격 나서면 통신시장에 일대판도 변화가 일어날 공산이 크다. 이처럼 통신사업에 세계적인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와이브로 딜레마’에 갇혀 한 걸음도 못 나가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LTE 시장에서 한국이 낙오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시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 고집에 낭비되는 주파수

한국도 이미 LTE 가입자가 2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2011년 7월부터 SKT와 LG U+가 LTE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이래 매년 가입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LTE의 수요에 비해 LTE 주파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유인 즉 가입자 2000만 명을 넘긴 LTE 통신이 총 80㎒ 폭의 주파수를 쓰고 있는 반면 가입자 100만 명을 겨우 넘긴 와이브로가 무려 60㎒ 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통신사들은 와이브로에서 LTE로 주파수를 전환 하자고 정부 측에 제안해놓은 상태지만 정부는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통신장비와 모바일 솔루션업체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와이브로 내수시장이 급속히 위축된 가운데 해외시장도 LTE 시장으로 전환돼 수출이 막혔기 때문이다. 특히 와이브로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는 LTE-TDD 시장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결단이 없어  기업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정인준 대구대 교수는 "와이브로와 LTE-TDD는 동일한 기술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현재 가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1년 정도면 LTE-TDD 장비업체로 전환할 수 있다"며 "통신장비와 모바일 솔루션업체들의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결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소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와이브로 퇴출 기조를 밝히지 않았고, LTE-TDD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시장진입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이 정부가 와이브로 사업을 중도에 접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와이브로를 차세대 국책사업으로 강하게 드라이브 해왔기 때문이다. 와이브로는  WCDMA와  LTE 등을 겨냥한 대항마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국산 통신기술로 만들어진 사업이다. 2006년부터 시작한 KT와 SK텔레콤의 와이브로 서비스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황금알을 낳을 사업’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국내외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부는 와이브로 서비스 부진에 따른 책임론과 정책 실패라는 역풍이 불거질 것을 우려해 선뜻 와이브로 사업을 포기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통신업체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와이브로를 LTE로 전환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며 “미국의 대표적인 와이맥스(WiMAX-와이브로의 별칭) 사업자인 클리어와이어(Clearwire)처럼 발 빠르게 LTE-TDD로 전환해 글로벌 통신 트렌드에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세계는 벌써 LTE-TDD 확산 중, 와이브로 대안 시급히 찾아내야

최근 LTE-TDD가 와이브로 대안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 이동통신서비스사업자들이 제공하는 LTE서비스는 FDD 방식이지만 수출기회 확대, 데이터 트래픽, 전환비용 측면에서 LTE-TDD방식이 더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 통신사를 비롯 세계 통신사 90%가 FDD방식을 쓰고 있다. 하지만 중국, 인도, 러시아 등 거대시장이 TDD 방식을 채택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피라미드리서치에 따르면 2015년 예상 LTE 가입자 수 4억2200만 명 중 LTE TDD 가입자는 1억5800만 명으로 37.4%에 육박할 전망이다. 더욱이 세계 최대 통신사업자 중 하나인 차이나모바일을 비롯해 각국 60여 통신사업자와 39개 벤더가 합류해 LTE– TDD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같이 LTE– TDD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 트래픽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 중인 FDD는 주파수 분할 방식(Frequency Division Duplex)으로 아무리 데이터가 몰리더라도 할당된 고정 대역폭 내에서 처리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시분할 방식(Time Division Duplex)인 TDD는 업로드와 다운로드를 같은 주파수에서 시간 차를 두고 나눠 처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즉 전체 시간의 상당부분을 다운링크에 할당해 다운로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사용자 대부분이 동영상, 음악 등 다운링크 사용 비중이 훨씬 높아 다운로드 데이터가 폭증하는 점을 감안하면 FDD 방식보다 TDD방식이 더 효과적인 기술이다. 이에 정 교수는 “TDD는 다운로드 데이터가 많은 비대칭적인 환경에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LTE전환 과정에서도 TDD가 더 효율적이며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와이브로가 TDD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로는 통신 단말· 장비업체의 경쟁력 제고와 수출기회 확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TDD 가입자는 중국을 필두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거대한 시장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통신시장의 순위가 뒤바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 교수는 “와이브로 통신장비 업체들은 기술적 유사성으로 LTE-TDD 분야로의 기술 전환 용이하기 때문에 국내 시장이 열린다면 충분히 매출을 신장시킬 수 있다”며 “해외에서도 LTE-TDD 도입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매출 확보 후 수출까지 손쉽게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통신사업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에서 LTE-TDD를 도입할 경우 2조 9500~5조 8950억원 수준의 생산유발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빠른 TDD 방식의 전환으로 정부의 정책실패와 내수시장 단절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통신장비와 모바일 솔루션 기업들에게 새로운 수출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와이브로뿐만 아니라 FDD방식에서 TDD로 ‘갈아타기’가 용이하다. 실제 와이브로와 특성이 비슷한 와이맥스의 사업자인 클리어와이어와 P1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에드를 중심으로 기존 기지국을 TDD방식으로 전환했다. 와이맥스와 LTE-TDD 기술의 뿌리는 다르지만 양쪽 모두 하나의 주파수 대역에서 업링크와 다운링크가 교대로 이루어지는 시분할 방식이고 이용 주파수 대역도 비슷해 장비 호환성이 높고 갈아타기가 쉽다. 더욱이 와이브로용으로 배치된 2.3㎒•2.6㎒ 대역은 LTE TDD 서비스에 있어서 최적의 대역으로 꼽힌다. 유럽을 비롯한 상당수 나라에서는 이미 해당 주파수 대역을 LTE TDD로 활용하기 위한 빠른 움직임을 보여왔다. 따라서 기존의 와이브로 사업자가 TDD방식을 구축하는데 있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LTE-FDD에서 TDD로도 전환이 용이하다. 두 방식간의 기술적 차이는 이중화 방식의 차이만 존재할 뿐 4G 핵심기술은 두 방식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특히 방사주파수(radio frequency) 기술은 80%가 유사하며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도 70%는 공유하고 있어 LTE-FDD방식을 구축한 사업자라도 LTE-TDD를 추가적으로 구축하는 데 소요되는 투자비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크 소리만 들어선 부족하다. 정부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은 지난 2일 “와이브로에서 LTE-TDD 전환에 대한 통신업체들의 노크 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윤 차관은 “LTE-TDD는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기술”이라며 “미래부가 와이브로 출구전략 마련을 위해 깊이 고민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한가롭게 고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 실천과 변화에 나설 시기가 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통신장비 강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TDD 방식에 적극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LTE-TDD 의 주요 핵심 기술을 보유한 유럽과 미국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타이밍을 놓칠 경우, 자칫 국내 통신 단말·장비업체들이 수출 시장과 경쟁력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배어 있다.  정 교수는 “국제적 조화와 규모의 경제를 고려, 기술 고립을 방지하는 등 기술의 이용 효율성 관점과 효율적인 주파수 활용을 위해 LTE-TDD 전환을 가급적이면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의 화두인 '와이브로와의 불편한 동거'가 언제쯤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