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만 팔로워를 거느린 소설가 이외수 씨의 트위터에서 얼마 전 통찰력이 번득이는 글을 발견했다. “사람이라는 글자의 미음(ㅁ)은 각이 져 있습니다. 각은 모서리이며 날카롭고 딱딱한 느낌을 줍니다. 미음에서 그 각들을 갈아서 모두 없애면 부드럽고 둥근 이응(ㅇ)이 됩니다. 사랑은 각진 미음을 갈아서 둥근 이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몇 마디 글이 메시지가 되고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남는 것을 보며 새삼 말의 묘미를 실감하게 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말 속에 신념이 깃들 때 그 말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오바마가 2007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버락’이라는 이슬람식 이름에 대한 보수층의 의구심과 우려를 슬쩍 건드리며 오바마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 미국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불쑥 물었던 것. 오바마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질문이 틀렸다”고 지적한 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지를 물어야지.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물어서는 안 된다”고 맞받아쳤다. 오바마의 종교적 정체성 논란을 한 방에 잠재운 현답(賢答)이었다.

종편 채널의 한 앵커가 최근 어이없는 말 실수로 그동안 공들여 쌓은 한중 간 우호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7일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사고 소식을 전하던 모 앵커는 “사망자 두 명은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밝혀졌다.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이라고 언급, 화를 자초했다. 경솔하고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온라인상에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에 찬 성토가 이어졌고, 결국 대한민국 외교부 대변인이 고개 숙여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언론인 간담회에서 문제의 앵커를 준엄하게 꾸짖으며 “몸에 주는 상처보다 마음에 주는 상처가 더 오래 가고 치유하기 어렵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북한에 대해 거침없는 돌직구를 던졌다. 박 대통령은 “서로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선 북한도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이) ‘존엄’이 어떻다고 하면서 우리가 옮기기도 힘든 말을 하는데, ‘존엄’은 그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북한이 김정은을 ‘최고 존엄’이라 지칭하면서 박 대통령을 향해 ‘독기 어린 치맛바람’, ‘괴뢰 대통령 박근혜’, ‘정신병자’ 등 막말을 일삼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이산가족 상봉 등을 둘러싸고 모처럼 남북협상이 재개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작심하고 던진 말이기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힘은 절제된 언어에서 나오는 측면이 강하다. 말을 아끼는 데다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때론 침묵이 백 마디 말을 앞서는 경우도 있다. 대북관계에서도 박 대통령의 화법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박근혜 스타일’에 북한이 오히려 적응해가는 예전과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말이 내를 건널 때는 고삐를 놓아주어야 한다. 몸이 자유로워야 운신의 폭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변화에 적응해간다는 뜻의 ‘순화(馴化)’라는 말 가운데 ‘길들일 순(馴)’이 말(馬)과 내(川)로 이뤄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북한도 이제는 아집과 고집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대화의 광장으로 나서야 한다. 남북한이 거센 물살의 내를 함께 건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를 거미줄처럼 옭아매고 있는 부정적 족쇄와 고삐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말폭탄’을 자제하면서 말 한마디에도 더욱 신중해야 한다. 같은 입이라도 하는 말에 따라 악취를 풍기기도 하고, 향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같은 종이라도 생선을 싸면 비린내가 나고, 꽃을 싸면 꽃 내음이 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