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회사채 시장 안정화를 위해 6조 4천억원을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자금 경색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경기 회복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향후 미국 유동성 축소, 중국과 EU의 경제 불안 등 대외 여건 악화에 따른 채권시장의 위기도 염두해 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정부 방안에 건설, 해운, 조선업종에 속한 기업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업종들은 업황이 부진한데다 실적까지 좋지 않아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상태다.

지난 1일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건설, 조선 해운의 올 하반기 회사채 만기 도래액은 4조3590억 원, 내년 상반기에는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당국도 이들 취약업종의 올해 하반기 회사채 만기 규모를 4조 7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실제 현대산업개발(3500억 원), 한화건설(3800억 원), 두산건설(3770억 원), 한라건설(2300억 원)은 내년 상반기에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고, 해운 4개사도 내년 상반기 회사채 만기 도래액이 9740억 원으로 부담이 큰 상황이다. 더욱이 업황 침체를 겪으면서 영업적자를 내고 있는 건설과 해운업계는 재무구조 약화로 차ㆍ상환용 회사채 발행이 어려웠다.   지난달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에 미국 양적완화 축소 방침 여파까지 겹치면서 회사채 시장의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경색돼 초우량 기업까지 자금조달 창구가 막혀버리는 사태가 이어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비롯한 각종 회사채 정상화 방안을 검토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이번 방안으로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회사채 만기 리스크가 큰 기업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신용 애널리스트는 "이번 방안이 신용등급이 'A-' 이하인 조선과 해운, 건설업종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이들 기업이 단기적으로 숨통은 틀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정부 방안의 핵심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회사채 차환을 도와주는 것이다. 정부는 만기 도래분의 20%는 해당 회사가 자체 상환하도록 하고 나머지 80%는 산업은행 총액인수 등을 통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후 산은은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 (P-CBO)로 유동화해 금융투자업계(10%)와 채권은행(30%), 신보(60%) 등 다양한 시장참여자에게 매각한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를 위해 증권유관기관 등과 함께 3200억원의 회사채안정화펀드를 조성한다. 신보는 기존의 '건설사 P-CBO'를 '시장안정 P-CBO'로 확대 개편하는데, 여기에 산은이 매입한 회사채와 일반 건설사 및 일반기업 회사채를 편입하고 신용보강을 통해 시장에 매각한다. P-CBO 발행 과정에서의 보증재원은 8500억 원 정도가 소요될 예정인데, 신보가 보유중인 여유재원 1500억 원과, 재정ㆍ정책금융공사가 3500억 원씩 부담해 총 7천억원을 투입한다.

그러나 해당기업이 시장에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회사채 안정화 방안의 대상인 기업은 제도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기업 평판과 신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또한 30%를 추가로 인수해야 하는 채권은행과 금투업계는 차환발행분의 인수 부담이 늘어나면서 떠맡아야 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통상 마찰도 우려된다. 지난 2001년 산은은 현대전자가 발행한 회사채를 인수하자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과 같은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