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정보처리학

탄소는 C, 산소는 O, 질소는 N... 주기율표를 달달 외우던 시대는 지났다. ‘한 가지 원소라도 어떤 구조를 갖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신소재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신소재가 개발되면 한정된 자원 때문에 제한됐던 ‘신소재’와 ‘신과학’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대체소재 개발의 첫걸음인 물질정보처리학이 요즘, 뜨는 이유다.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첨단기술들이 후일에 실생활에 등장하는 경우를 최근 자주 보게 된다. 과학기술 발전이 예상보다 빨리 전개되는 탓도 있겠지만 기술전문가들의 진단보다도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더 미래를 잘 예측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고 하던 기술들이 결국은 세상을 바꾸게 된다’는 말도 있다.

영화 ‘아이언맨 2’에는 전문가가 보면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주기율표를 보면서 가슴에 충전할 원자력 물질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합성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인체의 적합성까지도 컴퓨터가 판정하게 한다. 주인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인체에 무해한 새로운 원자력 물질을 창조해낸 것이다.

2010년 9월 일본이 댜오위다오 부근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한 사건이 일어났다. 중·일 양국이 자존심을 내걸고 보름 이상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던 이 사건은 발생 17일 만에 일본 검찰이 나포했던 중국인 선장을 ‘처분보류’ 형태로 석방하기로 결정하자 싱겁게 끝나버렸다.

당초 벌금형이라도 내릴 것이라는 외교 전문가들의 관측과 달리 일본이 중국 측 요구대로 아무 조건 없이 돌려보내는 쪽을 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중국이 자국산 희토류 금속을 일본에 수출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희토류 금속은 하이브리드카, 고성능 모터, 첨단 디스플레이, 시스템 반도체, 첨단 의료기기, 태양전지, 특수강 등 차세대 핵심 첨단제품들에 반드시 들어가는 희소 금속이다.

중국 ‘희토류 숨기기’ vs 각국 ‘대체소재 개발’ 전력

전 세계 희토류 금속 생산량의 95%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하여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중국이 희토류 금속의 공급을 줄이면 품귀현상이 일어나 차세대 주력산업을 키우려는 기술 국가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중국은 희토류 금속의 수출 쿼터를 줄이고 모든 첨단부품을 중국 내에서 제조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각국은 희토류 금속의 비축에 들어갔고 폐쇄했던 희토류 광산들을 재가동하는 동시에 대체소재 개발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급기야 2012년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류의 복지, 에너지, 안보기술을 촉진시킬 수 있는 첨단 신소재를 고속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술개발계획을 제안하게 된다. ‘물질 게놈 특별계획(Materials Genome Initiative)’이라고 명명된 이 개발계획에 미국 정부는 연 1억달러를 투자하여 신소재 개발 기간을 종래 18~20년에서 5년 내로 앞당길 수 있는 새로운 고속물질해석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전까지는 신소재를 개발하려면 도가니나 가열로에 원료 소재들을 넣어 녹이거나 단결정 성장로에서 결정을 키워서 시험편을 시험해봐야만 물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속물질해석기술을 이용하면 순전히 컴퓨터 계산으로만 물질의 성질을 해석해낼 수 있게 된다.

대체소재 개발은 물질 정보 정돈이 시작점

아무리 컴퓨터 처리 속도가 빨라져도 계산만으로 물질의 성질을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지려면 물질의 기본 성질들이 잘 규명되어 있어야만 한다. 마치 생물체의 유전자와 같이 물체의 성질을 규정하는 근본 원리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물질의 기본성질들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주기율표다. 이 표엔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들이 모두 정리되어 있다. 원자번호가 증가함에 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원자번호, 즉 원자량이 증가하는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이때 배열된 줄마다 그 물질 원자를 에워싸고 돌고 있는 최외각전자들의 배치가 유사해 화학반응 경향이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이 주기율표는 자연계 물질원소의 성경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다. 같은 원소라 해도 여러 개의 원자들이 서로 뭉쳐서 마치 커다란 한 개의 슈퍼 원자같이 되면 이들 클러스터를 이룬 원자들이 최외각전자를 서로 공유하면서 밖으로 드러난 최외각전자의 배치가 바뀌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알루미늄(Al) 원자가  6개 모이면 루테니움(Ru), 7개가 모이면 게르마늄(Ge), 13개가 모이면 브롬(Br)이나 요오드(I), 14개가 모이면 스톤티움(Sr)과 최외각전자 배열 모습이 같아져서 화학적 성질이 동일해진다는 것이다.

즉, 한 가지 원소라도 어떤 구조를 갖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물질과 같이 거동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원리로 텅스텐탄화물(WC)은 백금(Pt)과 같고 티타늄(TiO)은 니켈(Ni)과 같아진다. 화학적 성질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바나듐(V)과 나트륨(Na)의 화합물에서 바나듐 1개당 나트륨 8개가 결합한 VNa8은 망간(Mn)과 같은 자기적 특성을 갖고, 나트륨 9개가 결합한 VNa9은 크롬(Cr)과 같은 자기적 성질을 갖는다.  물질의 성질을 더는 주기율표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또 원자들이 섞이면 화학적 결합을 한 화합물을 만들거나 설탕이 물에 녹아 있는 설탕물과 같이 서로 원소들이 뒤섞여 있는 고용체 합금을 이룬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원소들 간의 평형 상태도를 만들어서 합금을 만드는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여러 원소의 격자들이 중첩되거나 다면체 결정격자를 만든다는 사실이 최근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알루미늄, 망간, 실리콘(Si)이 섞이면  정20면체 Al-Mn-Si 준결정이 만들어져 매우 경도가 높고 내마모성이 큰 소재가 된다든지,  PbSe 나노입자들과 Fe2O3 나노입자들을 섞으면 완전히 새로운 초격자의 광자기 재료가 된다든지, 금 나노입자들과 바이러스 단백질들이 결합하여 초격자를 만든다든지 이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다양한 물질구조들이 나노물질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다.

물질 정보 규명하는 물리정보처리학이 뜬다

최근 일각에서는 3차원 주기율표를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물질들의 합금이나 화합물 외에도 새로운 격자물질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포함한 물질해석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즉, 양자역학이나 자력장을 고려한 통계역학을 이용해서 물질의 기계적, 열적, 전자적, 광학적, 자기적, 화학적 성질들을 모두 계산해낼 수 있는 계산역학모델들이 개발되고 있다. 영화 속 ‘아이언맨’이 컴퓨터에 시뮬레이션을 시켜 만들어낸 방식과 마찬가지로 신물질을 계산만으로 창조해내는 일이 현실 세계에서도 가능할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은 IBM이 운영하는 가상슈퍼컴퓨터(클러스터 컴퓨터)를 활용해서 230만 종의 유기물들을 점검해보니 대략 1000여 종의 유기물들에서 태양광 발전 전환효율이 11% 이상 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또 10% 이상을 기준으로 하면 3만5000종이 해당되었다. 현재  유기물 태양전지 대부분의 태양광 전환효율이 4~5%인 점에 비추어보면 이론계산에 의한 신소재 개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이들의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모든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기존 주력산업들의 기술들도 더 발전하려면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신물질들이 먼저 등장해야만 한다. 그래서 시행착오적인 실험과학보다 계산과학을 통한 물질개발이 더 중요하며 물질의 정보를 처리하는 물질정보처리학이 핵심기술로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