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경영

시에서 배우는 역발상 방법

오동은 고목이 되어갈수록
제 중심에 구멍을 기른다
오동뿐이랴 느티나무가 그렇고 대나무가 그렇다
잘 마른 텅 빈 육신의 나무는
바람을 제 구멍에 연주한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아니랴
수많은 구멍으로 빚어진 삶의 빈 고목에
어느 날
지나는 바람 한 줄기에서 거문고 소리 들리리니
거문고 소리가 아닌들 또 어떠랴
고뇌의 피리새라도 한 마리 세 들어 새끼칠 수 있다면
텅 빈 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바람은 쉼없이 상처를 후비고 백금칼날처럼
햇볕 뜨거워 이승의 한낮은
육탈하기 좋은 때

잘 마른 구멍하나 가꾸고 싶다
- 복효근 <고목>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지는 어조사로 우리말로 치면 ‘~의’라는 뜻이다. 그러니 무용지용이란 무용의 용이라고 해석된다. 무용지용은 그래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다고 인식된 것을 사용함을 의미한다.
알다시피 이 무용지용은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는 여기에서 “사람은 모두 유용(有用)의 용(用)만을 알고 무용(無用)의 용은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무용지용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쓸모 있게 하는 역발상, 즉 발상의 전환 얘기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역발상을 하라”는 말을 들어왔다.
문제는 어떻게 ‘무용지용’의 역발상을 해낼 것인가다. 역발상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어떻게 역발상을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역발상을 강조하는 사람도 그에 대한 방법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역발상 하라는 말은 어찌 보면 잔소리에 불과하다.
역발상을 하려면 먼저 ‘무용이란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그제서야 그 쓸모를 보려고 하고, 찾으려 한다.
다음은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나름대로 모두 쓸모를 지니고 있으니 나름의 쓸모가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관찰에서 나름의 쓸모가 나에게 유용한지를 살핀다. 만약 유용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무용은 나름의 쓸모가 나에게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본 결과다. 여기서 역발상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 나온다. 바꿔보기다. 바꿔보기의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의인화다. 나름의 쓸모를 다른 존재로 활용하기 위해 상대의 입장이 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목에서 역발상을 한다고 치자. 우리가 아는 사실은 고목은 땔감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기름을 활용하는 우리에게 지금 땔감이란 필요치 않다. 무용이 되는 것이다. 역발상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는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고목이 되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찾을 때 나온다.
복효근 시인의 <고목>이라는 시를 보라. 나무는 늙어 고목이 되면, 구멍을 기른다고 한다. 자신의 육신 중심에 수많은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물음이 역발상의 시작이다. 고목은 자기가 죽어도, 자신의 육신을 활용해 삶을 이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다.
그 방법이 자기 육신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바람이 들어와 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바람은 빠르게 들어오기도 하고 느리게 들어오기도 하며 높낮이를 조정해 악기 연주를 한다. 그 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처럼 들릴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생각은 시인이 고목이 되어 고목의 입장에서 삶을 정리하고 있기에 가능한 아이디어다.
고목이 된 시인은 또 말한다. 피리새라도 한 마리 그 구멍 속으로 들어와 새끼를 칠 수 있다면 고목의 텅빈 삶이 향기로워질 수 있다고.
삶의 끄트머리에서 모든 것을 비운 고목-구멍-바람의 놀이터, 피리새의 산파실-향기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이 같은 시의 전개 과정에서 고목이라는 쓸모없는 존재를 거문고 소리나 향기로운 삶으로 바꾼다. 역발상이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소 대표

이재훈 기자 huny@ermedia.net


키워드

#시와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