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와 ‘기의’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프랑스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드 소쉬르’가 남긴 이 유명한 ‘금언’이 조만간 인터넷 기업 직원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때가 오지 않을까.

구글(Google),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인터넷 기업들의 뇌과학 연구가 점입가경이다.

이들 기업들은 하버드나 MIT 출신의 유명 뇌과학(Brain Science) 전문가를 고용해 인터넷의 미래를 탐색하고 있다.

로켓 과학자들을 앞세워 첨단 금융상품을 개발하던 월스트리트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뇌과학은 이들 기업이 당면할 위기(Threat)와 기회(Opportunity)를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언어학’은 인간 두뇌의 특성을 가늠케 하는 풍향계이다. <편집자 주>

구글이 검색 분야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창업자들의 남다른 학문 배경에 주목한다.

구글의 창업주인 ‘래리 페이지’는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이수했다. 인공 지능을 전공한 그의 지도 교수는 ‘테리 위그노어드(Terry Winograd)’ 박사.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부문의 세계적 전문가이다. 래리 페이지가 일찌감치 검색시장을 뒤흔들며 시장의 절대강자로 부상한 이면에는 인지과학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 인지과학은 말 그대로 인간의 두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학문.

“최적의 뇌신경(Neuron)은 자신을 둘러싼 다른 신경세포와 가장 많은 ‘링크’를 유지한 세포이다.” 진화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통찰은 인터넷 진화의 자양분이다. 구글 전성시대를 불러온 검색기능인 ‘페이지 링크’는 이러한 통찰의 산물이다.

구글은 이러한 통찰력으로 검색시장 제패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한사람의 두뇌에 1000억개나 있는 뉴런은 인터넷의 여러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 뉴런은 방사형으로 연결돼 있는데, 구글이 도입한 ‘페이지 링크 시스템’은 바로 이 방사형 시스템의 판박이다.

뉴런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검색 엔진은 가장 많은 링크를 보유한 ‘페이지’를 추려내고, 이러한 연결의 ‘적절성(Relavanc)’ 또한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이러한 방식이 먹히는 것은 바로 두뇌의 작동방식과 비슷하기 때문.

“인터넷 기업들 중 뇌의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구글이며, 인터넷의 미래상을 알고 싶으면 이 회사의 변화를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지 과학자인 ‘제프리 스티벨’ 웹닷컴 최고경영자의 조언이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사업에 뛰어들 당시 이미 뇌과학의 고수였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미국의 DVD업체인 ‘넷플릭스(Netflix)’도 뇌과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다. 이 온라인업체는 100만달러의 거액을 내걸고 더 정교한 ‘알고리즘(Algorithm)’을 수소문했다.

이 사이트에서 DVD를 빌린 고객들을 상대로 다른 영화를 추천하는 프로그램인 ‘시네매치’의 정확도를 10% 이상 높이는 팀이 수상 대상이다.

소비자들의 기호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문제는 DVD 대여기록으로 ‘취향’을 가늠하는 작업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알고리즘의 정확성을 8% 정도 높인 팀은 간혹 등장했지만, 마의 10%벽을 돌파한 이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대부분 해당 분야의 고수들이었다. 유명 통신사 연구원이나, 프리랜서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이 주종을 이뤘다.

전문가들이 팀을 구성해 합류하기도 했다. 거액의 상금은 결국 막판에 자신들의 알고리즘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예측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연합팀에 돌아갔다.

하지만 수상자들 외에도 높은 관심을 불러 모은 이는 뇌과학자인 ‘개빈 포터(Gavin Potter)’였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경쟁의 우위는 바로 ‘뇌’ 이론이었다. 참가팀 대부분이 DVD 고객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알고리즘에 더 많은 관련 정보를 입력한 반면, 개빈 포터는 거꾸로 갔다.

알고리즘의 추천 정보를 대폭 줄여 거꾸로 검색의 정확성을 높였다. 역발상이었다.
“두뇌가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더 정교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제한된 정보로 특정 패턴을 빨리 파악해 ‘유추’를 하는 게 인간의 두뇌입니다.” 인터넷은 인간의 두뇌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들가들의 진단이다.

개빈 포터는 우승은 놓쳤다. 넷플릭스가 내건 우승 상금은 각자 개발한 알고리즘의 장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프로그램’을 막판에 선보인 연합팀에 돌아갔다.

하지만 개빈 포터는 ‘시네매치’의 정확성을 8.79%까지 끌어올려 막판까지 참가팀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래리 페이지나 개빈 포터가 선전한 이면에는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은 거대한 정보 저장창고를 가진 두뇌와 비슷한 모습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력을 인터넷 검색사업에 가장 먼저 반영하고, 꾸준히 뇌과학의 성과를 비즈니스 모델에 반영해 온 것이 바로 검색 기업의 절대 강자인 ‘구글’이라는 것.


아마존·페이스북도 전략의 핵심은 ‘뇌’
뇌과학에 정통한 인터넷 기업은 비단 구글뿐만은 아니다. 온라인서점인 아마존, 페이스북, 야후,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자랑하는 인터넷 기업 전략의 핵심에는 바로 이러한 ‘뇌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 인터넷 기업들은 대부분 스탠퍼드, 하버드, MIT 출신의 두뇌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

이들 인터넷 강자들이 뇌과학에 공을 들이는 이면에는, 5~10년 후 인터넷에 불어닥칠 환경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기회’와 ‘위협’ 요소를 미리 내다볼 수 있어야 비즈니스 모델도 담금질할 수 있다. 뇌과학의 성과들은 인터넷의 미래를 가늠하는 풍향계이다.

일부 기업들이 인간의 ‘두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와 소통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인 것도 이러한 통찰력의 산물이다.

“이 기업들은 인터넷이 가파른 속도로 두뇌를 닮아 나갈 것이라는 암묵적인 신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뇌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예측’ 능력에 있다는 것이 뇌과학자 제프리 스티벨의 분석이다.

뇌과학을 적용할 수 있는 부문이, 비단 인터넷 기업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교한 예측시스템은 소비자들의 카드 사용 행태에서 동일한 ‘패턴’을 읽어내 교차 상품을 권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특정 소비계층을 겨냥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의 주춧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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