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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읽게 된 인터뷰를 보며 크게 공감한 일이 있었다. 뮤지션 김사월과 요조, 작가 이슬아, 이윤서가 함께한 인터뷰였다.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그녀들은 함께 모여 비건 음식을 만들고, ‘채식’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채식을 시작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요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동물을 마음껏 귀여워하고 싶었어요. 트위터에 올라오는 귀여운 동물의 영상을 즐기는 동시에 소비하는 모습이 이중적으로 느껴졌거든요.”나 역시도 일 년 전부터 채식을 지향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레어로 구워진 스테이크를 볼 때면 육즙보다 핏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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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북 크리에이터
2020.07.1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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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장점은 출근이 없다는 것이고, 단점은 퇴근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던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져있지 않은 노동자가 된지 어느덧 일 년째다. 여전히 갈 길이 먼 새내기 프리랜서지만, 프리랜서가 된 직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애를 먹었다. 내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제대로 운용하는 것도, 모든 것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업무방식도 버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일과 휴식의 경계를 찾는 일이었다.나의 모든 작업은 주로 안방에서 이루어졌다.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요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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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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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신형철은 자신의 저서 을 통해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라고 말했다. 이어,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부터 내가 전할 한 노인의 이야기가 고통에 대한 공부가 될 수 있을까?노인은 영등포 쪽방촌에 살았다. 손글씨로 쓴 광고판을 팔아 근근이 삶을 이어오던 그는 어느 날인가 모아둔 돈을 들고 시장에 나섰다. 오랜만에 고기라도 먹어볼까 고민하던 그의 눈에 띈 것은 박스에 담겨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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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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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이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내 쪽에서 다시 걸자, 엄마는 얼른 전화를 받아들고서 뜬금없게도 안부를 물어왔다. 평소에 별 시시콜콜한 일로도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터라 구태여 안부를 묻는 게 수상했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더니 간밤에 꾼 꿈이 좋지 않았단다. 나는 별일 없다며 엄마를 안심시킨 뒤 이렇게 덧붙였다.“원래 엄마 꿈이랑 내 꿈은 늘 개꿈이잖아!”엄마는 ‘그건 그렇지’라면서도 ‘그래도 조심히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간밤에 꾼 꿈이 온종일 눈에 밟힐 때가 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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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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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도록 끔찍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무기력의 증상은 다음과 같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깨어있는 시간과 잠들어 있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낮에는 늘 몽롱했고, 늦은 새벽에는 온몸이 경직되고 갑갑해 이불을 박차기 일쑤였다. ‘저녁과 아침은 자신의 내적 우주로 들어가는 문’이며, ‘그 문으로 어떻게 들어가고 나오는지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나의 경우에는 아예 ‘그 문’이 박살 나버린 기분이었다. 자고 깨는 시간이 들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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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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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불리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를 오가던 나그네들을 상대로 나쁜 짓을 일삼던 강도였는데, 그는 특이한 침대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혀놓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잡아 늘여뜨려 죽였다. 이 이야기는 주로 ‘타인을 내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횡포나 독단’에 대해 경고할 때 인용된다.내게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지만 사정이 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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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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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폭력적이었던 무더위가 드디어 가시기 시작하던 작년 9월, 나는 처음으로 러닝을 시작했다. 내게는 ‘글 쓰며 러닝 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마라톤을 예찬하는 두 작가 김연수와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받은 자극 때문이었다. 건강한 몸에 깃든 건강한 정신! 나날이 단련되는 지구력! 고통을 넘어선 러너만이 경험할 수 있다는 러너스 하이! 나는 기대와 설렘을 잔뜩 품고 러닝 매니아인 친구를 따라나섰다. 첫 러닝의 결과는 참담했다. 거뜬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3km 완주’는 커녕 그 반절도 뛰지 못했다. ‘이제 더는 못 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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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북 크리에이터
2020.04.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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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나보고 ‘공백이’ 하지 말고 ‘빽빽이’로 개명하래...!”나는 스마트폰을 쥔 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칭얼거렸다. 얼마 전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달린 한 댓글 때문이었다. 채널 이름은 ‘공백의 책단장’인데 영상에서는 전혀 여백의 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리하여 시청하기가 매우 피곤했다는, 날카로운 내용의 댓글이었다.나는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노려보았다. ‘빽빽이로 개명하시는 게 어떨지..ㅋㅋ’ 문장 뒤에 따라붙은 두 개의 ‘ㅋ’이 못 견디게 얄미웠다. 기어코 친구를 울린 후 혀를 빼물고 달아나는 악동같이 야속했다. 익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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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북 크리에이터
2020.03.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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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계획으로는 ‘요가 배우기’가 있었고, 내년 계획에는 ‘방송댄스 배우기’가 내정되어 있다. ‘영어 배우기’는 매달 빠지지 않는 단골 계획이다. 성취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내 삶은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배움’으로써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나’라는 타이틀이다. 매일 새벽 요가를 하며 평정을 찾는 멋진 나!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열정적인 나! 꾸준한 영어공부로 회화 능력을 습득한 성실한 나!해가 바뀌고 달이 바뀔 때마다 다짐하는 모든 계획이 그러하듯, 내 계획도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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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북 크리에이터
2020.03.0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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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지만 세상을 반으로 나눠보려는 시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쪽은 펴보지도 못한 책이 수두룩 빽빽이어도 기어코 책을 사 모으는 사람, 다른 한쪽은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책을 사는 사람. (책을 사지 않는 사람도 포함한다면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도 있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곤란할 정도로 전자에 속한다. 택배 봉투를 다 뜯기도 전에 다른 책을 주문하고 있고, 서점에 들어갔다 하면 책 두어 권쯤은 꼭 사서 나온다. 가지고 나간 책 몇 권, 새로 산책 몇 권. 이렇게 대여섯 권이나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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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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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4년 전쯤 별다른 목적도, 아는 바도 없이 훌쩍 떠나 시골마을에 있는 성당에 다녀온 이후 처음이었다. 물론 이번 기차를 탈 때에는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이라는 아주 명확한 목적이 있었고, 약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여행’이라 부르기는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렇지만 얼마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좌석에 올라앉았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기차에 탑승하기 전 역 근처의 서점에서 손가는 대로 한 권의 책을 고른다. 미리 예약해둔 창가 좌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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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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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문장의 첫 부분부터 ‘개’를 언급하는 방법은 단도직입적이기는하나 매력적이지는 않은 시작일지 모른다. 하지만 투박하게 시작해보기로 하자.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 집 ‘개’로부터 출발한다. 이름은 둔둔. 나이는 한 살 반. 경기도 변두리의 산업지대를 방황하던 떠돌이 강아지였는데 여러 번의 우연을 반복하다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어 걸을 때면 궁둥이를 빵실빵실 흔들며 걷는데, 그 뒷모습이 몹시 귀엽다. ‘볼기 둔(臀)’자를 두 번 써 ‘둔둔이’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남들보다 궁둥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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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북 크리에이터
2020.01.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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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게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다. 자주 말문이 막혀 한두 줄도 겨우 써 내려갈 때가 많다. 괜스레 지난 일기들을 뒤적여보니 죄다 비슷비슷한 일과들로 채워져 있다. 구불구불, 의욕 없어 보이는 글씨들. 이 글씨체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마지못해체’ 라는 이름이 적당할 것 같다. 이 ‘마지못한’ 일기들은 해의 중반을 넘어가며 띄엄띄엄 해지더니, 연말인 지금은 거의 백지와 다름없다. 이마를 콩콩 쥐어박으며 다이어리를 노려본다. 12월인데도 새것과 다름이 없다. 이니셜까지 새겨가며 제작한 비싼 다이어리인데 그 속은 단출하다 못해 궁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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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 북 크리에이터
2020.01.03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