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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면 가게 문을 닫고 제주를 떠돌았다. 또 다시 옮겨가야 할 가게를 찾기 위해 제주를 몇 바퀴는 돌았다. 무작정 돌아다닌다고 가게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아무런 임대 정보도 없이 여기저기로 차를 몰았다. 부동산에 나온 상가는 다들 너무 비쌌다. 여행객이 좀 온다 싶은 동네면 월세가 몇 백이었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사실 우리는 무작정 돌아다니고 싶었다. 가게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막막함을 길 위에서 떨쳐버리고 싶었다. 그때까지 계속되어 온 불운에 대한 원망과 앞으로도 더 계속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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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7.03.2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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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재오픈하면서 자연주의를 완성했다.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으로 바꾸고, GMO를 완벽하게 Non-GMO로 바꾸고 나니, 재료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공조미료 대신 천연재료로 감칠맛을 내야 하는지라 원래부터 재료비가 만만찮았는데, 이제는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짜장면은 5000원에서 8000원으로, 짬뽕은 8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렸다. 그러나 이 또한 패착이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하거늘, 우리는 꿈만 야무졌지 주변 환경이 어떤지 자본주의적 계산 능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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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7.01.2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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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우리 부부는 식재료를 더 철저하게 사용하기로 했다. 평택에서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식품첨가물과 GMO(유전자조작작물)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시작한 자연주의 음식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강해져갔다. 기왕에 이 길로 들어선 바에는 아는 만큼 완벽하게 실현하고 싶었고, 제주에서 새 출발하는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바꿔야 할 품목이 첫째는 서양밀이었고, 둘째는 GMO였고, 셋째는 농약재배 농산물이었다.우리가 만드는 면은 밀가루에 톳가루와 천일염만 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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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11.22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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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어 달을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보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앉아서 세월을 죽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친구는 베꼈건 어쨌건 방송 덕을 톡톡히 보며 대박행진인데, 우리도 하루 빨리 재오픈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다시 집과 땅을 알아보러 다녔다. 원래 계획대로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며 식당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제주의 부동산 시세는 이미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때만 해도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돈으로 구옥 한 채는 장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부동산 업자들이 너무 장난을 쳐댔다.매물을 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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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10.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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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공개 사과 이후에도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방송은 형식적으로라도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했으므로 더 이상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당사자였다. 방송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을 뿐, 문제는 그의 창업이었다. 우리는 배신감에 더 치를 떨었다. 그는 우리의 뜻을 이해하려 애썼고, 스펀지처럼 우리 생각을 잘 받아준 유일한 직원이었다. 그래서 열 달 동안 부딪침 없이 함께 일을 했다. 이 업계의 이직률을 보면 제법 긴 시간이었다.히포크라테스가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이 없다고 했다. 이는 뒤집으면 음식이 모든 병의 원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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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9.2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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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짜장면집은 2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관광객들이 휭하니 왔다 가면 그만인 마라도에선 단골이 없어서 힘든 거라며 육지 어디에서든 문만 열면 대박일 거라던 기대감은 불과 몇 달 만에 무너져 내렸었다. 인공조미료의 세상이 너무도 견고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돈 없는 서민의 주머니를 ‘삥 뜯는’ 금융자본주의의 거미줄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우리 부부가 하루 열 시간 이상씩 일해서 번 돈은 임대료와 빚잔치로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상처투성이 몸으로도 치유와 재기를 할 수 있으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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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8.0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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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쉬 나가지 않았다. 택지개발지구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는 중이었다. 우후죽순 들어선 원룸은 빈 집이 많았고, 대박의 꿈을 안고 먹는 장사를 시작한 수많은 상가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세 들어 있던 건물 2층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섰다가 우리보다 더 빨리 손 털고 나갔을 정도다. 그래도 그 상가는 유명 프랜차이즈라는 또 다른 거품 때문에 손쉽게 인수자를 만날 수 있었다. 또 다른 희생양인 그 인수자가 안 됐다기보다 권리금 두둑이 얹어 받고 나간 전 세입자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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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6.2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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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임대료와 대출 이자를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개업한 지 5개월 무렵부터 ‘투잡’을 시작했다. 남편은 마라도에서 장사하던 방식대로 평택에서도 하고 싶어 했다. 그 일은 남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이었고, 가장 그리워하는 일이었다. 가장 하고 싶어 한 일은 낚시였지만, 낚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으므로 고기를 공수해서 파는 일을 택했다.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되었으므로, 제철 만난 방어를 육지 사람들에게 판다면 틀림없이 큰돈이 될 거라고 믿었다. 문제는 어떻게 실어오느냐는 것이었다. 신선함이 생명인 횟감을 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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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5.17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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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이야기는 평택에서 개업 두 달 이후 어떻게 지속적으로 망해왔는가에 대한 복기이다. 개업하는 날부터 두 달 동안, 어떻게 알고 그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도 불가사의지만, 또 두 달 만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는지도 불가사의다. 도시에서의 소문은 그토록 빠르고, 도시 사람들의 행동 역시 빠르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할 뿐이다. 그렇다고 매상이 형편없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훨씬 나았고, 단골도 꽤 있었다. 그럼에도 매달 적자 행진을 한 이유의 핵심은 터무니없는 임대료 때문이었다. 부가세를 합해서 매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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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4.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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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 원종훈 씨는 짜장면집 8년 만에 요리에 득도를 한 듯하다. 생전 처음 해보는, 어떤 경우에는 먹어본 적도 없는 메뉴도 인터넷에 널린 요리 동영상 한두 가지 보고 나면 금세 따라 한다. 이런저런 재료를 갖다 놓고 눈대중, 손대중으로 집어넣고는 휘리릭 섞어 뚝딱 완성하는데, 심지어 맛도 보지 않고, 접시에 담아 내어놓는다.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진짜 다 된 거야? 간이라도 좀 봐야 되는 거 아냐?”라고, 내 깜냥에는 서당개 8년 차랍시고 알은 척을 하지만, 남편의 귀에는 그저 가당치 않은 참견에 불과한 소리를 해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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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4.0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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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도 색깔 이야기다. 색채 미학은 어느 분야에서든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요리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색깔이다. 특히나 서양 요리가 흔해진 요즘에는 커다란 접시에 한 입 크기의 음식 몇 점 올려놓고 형형색색의 소스로 밑그림을 그리듯이 몇 줄 그어주고 허브 가루 투두둑 뿌려주는 이른바 플레이팅 기술이 인기를 끄는데, 이러한 기술의 핵심도 역시나 보색 대비를 이용한 색의 조화이다. 맛 자체보다 ‘모양질’이 더 중요시되는 것 같아 그리 마음에 드는 문화는 아니지만, 결국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더라’의 서양식 버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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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3.0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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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은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마라도를 나오면서 ‘탈출했다’고 표현할 만큼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막상 세상을 향해 전을 펼치려니 마라도를 이용해 먹어야겠다는 계산이 섰다. ‘마라도’하면 ‘대한민국 최남단’과 ‘짜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멀고 먼 섬에서, 그토록 유명한 짜장면집이 이곳 평택까지 오다니!’ 하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줄 알았다.그러나 계산은 신통치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라도가 어디 있는 섬인지도 몰랐고(영화 의 그 마파도냐고 묻는 사람들이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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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2.2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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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마라도에서 번 돈과 임대 보증금을 돌려받은 돈이 꽤 된다 생각했는데, 반년 이상 생활비로 쓰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고작 2500만원이었다. 어디서 어떤 가게를 열더라도 터무니없는 돈이었다. 포장마차 하나 차릴 만한 밑천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 되겠지’하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과 ‘문만 열면 대박이야’라는 가당치 않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란 코딱지만큼도 할 수 없던 때였다. 사업 말아먹고 마라도로 들어가 낚시에만 미쳐 살던, 중년이 넘은 남자와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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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2.0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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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으로 돌아왔다. 시 외곽의 오래된 아파트라 2014년 매매가가 4천이 조금 넘는 선이었다. 5년 서울살이로 모은 돈과 시(詩) 창작지원금으로 받은 돈으로 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내가 집을 소유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니 그게 가능해졌고, 더구나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시를 써서 받은 돈을 보탰으므로 나는 그 집을 진정 사랑했다. 유기견 세 마리와 알콩달콩 살던 그 집을 떠나 마라도에 들어갔다가 햇수로 3년 만에 다시 돌아왔을 땐 식구가 둘이나 늘었다. 남편과 아이가 그 집으로 들어오자 비로소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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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1.1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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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정된 시기보다 6개월 이상 빨리 마라도를 떠나기로 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골프카 때문이었다. 견디다 못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어차피 떠날 곳이었으므로 이런저런 미련을 완전히 접게 해준 골프카가 오히려 고마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15여년 동안 마라도에 정 붙이고 살아온 남편은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 했다. 그날도 다른 짜장면집에서 호객용 골프카로 손님을 다 실어가 버려 우리 가게 앞을 걸어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나는 마침내 폭발했다.당장 나가자고, 제발 부탁이라고, 울며불며 남편의 가슴팍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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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6.01.0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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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새해를 3일 앞두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는 전과는 확연히 다른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3주 동안 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하면서 간식까지 합해 하루 다섯 끼를 먹었는데, 오로지 먹고 자고 젖 먹이는 일만 해도 칭찬받는, 엄마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호사를 누렸다. 간혹 그런 호사가 그리워 딱 한 달만 조리원 신세를 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려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함정이지만, 또한 그러려고 둘째를 가진 건 아니지만 말이다. 조리원 생활을 아쉬워하며 마라도로 돌아온 뒤로도 다행히 나 대신 일 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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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5.12.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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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기사는 나지 않았다. 그 요란스러운 이송 과정이 극적인 결말을 맞으려면 구급차 안은 아니더라도 조산원에 도착하자마자 쑥 나왔어야 하는데, 요 녀석은 그러고도 한참을 대기 상태였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른 새벽부터 여러 사람 불러내어 고생시킨 것이 절대 가짜 임산부도 아니오, 진통이 엄살도 아니라는 걸 어떻게든 드러내야 할 것 같아 카메라 앞에서 등허리에 손을 받친 채 한껏 배를 내밀고 곧 비명이라도 지를 것처럼 얼굴을 구기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 정도면 보고용으로는 훌륭했을 것이다.구급차를 타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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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5.12.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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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9일. 우리 첫 아이, 기련이가 태어났다. 나를 마라도에 남아 있게 한 아이, 나와 남편을 자연주의로 이끈 아이, 가게가 망하고 또 망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게 한 아이가 새해를 이틀 앞두고 태어났다.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특별한 존재로 오려고 그랬는지 그 출생 일화도 어지간히 요란했다. 8년 전 기억을 더듬고 더듬다 보니, 바로 엊그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글을 줄일 수 없어 2회로 나누어 싣기로 한다.작은 섬에 살다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그곳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출산도 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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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5.11.19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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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조미료 제거에서 시작된 우리의 자연주의 음식은 설탕 문제로 나아갔다. 설탕? 설탕이 뭐? 나는 남편이 설탕 문제를 꺼냈을 때 ‘죄 없는 설탕’을 두둔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30여년 맹신한 MSG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과 똑같이 30여년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즐겨왔던 ‘달다구리’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짜장도 단맛이 꼭 필요한 음식이다. 천연의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를 많이 사용하지만, 아무리 양파를 많이 넣어도 적당한 단맛을 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설탕을 넣게 되는데, 원래 사탕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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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5.11.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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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 산다는 이유로 방송을 타는 일이 잦다. 마라도는 최남단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섬 이상의 섬이었다. 2002 월드컵 때는 생방송 차량이 들어와 골대가 갖춰진 잔디밭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응원 모습을 내보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당 대표가 헬기 타고 등장하기도 했고, 무슨 당을 창당한답시고 마라도 주민을 발기인 이름에 올리고 창당대회에 초청하는 등 최남단이라는 걸 곧잘 이용해먹곤 했다. 전교생이 두 명 또는 세 명뿐인 마라분교의 아이들도 전파를 곧잘 탔다. 마라도에서 짜장면을 시켜도 잘 터진다는 설정의 휴대폰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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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외향 칼럼니스트
2015.10.21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