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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야설에 빠진 나라
구승준 칼럼니스트  |  joon@econov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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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3.25  0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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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도록, 이 땅에 매일 같이 ‘야설의 만나(manna)’가 쏟아지고 있다. 해외 몇몇 도시에서 ‘한 도시, 한 책 읽기(One Book. One City)’ 운동이라는 이름의 문화 축제가 벌어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한 나라의 온 국민이 ‘야설’을 함께 읽는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하루하루 일용할 ‘야설’을 공급하는데 뛰어든 유통사이자 배급사는 TV, 신문, 인터넷 뉴스, SNS 등 전방위적인 미디어다. 내보내기가 무섭게 조회 수가 올라가는 ‘핫한 아이템’이라 그런지, 굳이 안 알려줘도 될 법한 영역까지 보도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의 눈과 귀를 파고든다. 이 미디어의 공해는 ‘중국발 스모그’보다 강력해서 이 땅에 사는 한 피해갈 도리가 없다.

덕분에 우리는 탤런트 박시후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A양이 지인과 나눈 카톡 메시지 전문을 연재소설의 복선처럼 탐독하며, CSI 과학수사대처럼 사건을 이리저리 퍼즐 맞추듯 재구성한다. 연예인 사건에 관한 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카톡 메시지 전문이 가감 없이 ‘무삭제판’으로 까발려지는 것쯤이야 당연한 수순이다.

이 막장 드라마는 약물 검사, 합의금 요구, 맞고소, 전 소속사의 음모론,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등 웬만한 영화나 소설보다 풍성한 이야기의 결을 가지고, 지금도 동화 속 ‘재크의 콩나무’처럼 뻗어가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 콘텐츠가 빈곤하다고 했던가? 더욱이 소속사와 변호인 측에서 여론의 동향을 깨알같이 챙기는 덕분에, 최첨단 인터렉티브 드라마의 장점까지 두루 맛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박시후’ 사건이 급속한 피로감과 더불어 대중의 관심에서 이탈하려는 찰라, 연예계의 잇따른 성상납 루머에 인권운동가 고은태 교수의 성희롱 발언, 사회 고위층의 성접대 동영상 파문이 연달아 터졌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별장 성접대 파문’에는 정 · 관계의 고위 관료를 비롯해 유력 인사가 다수 포함되어 사안의 규모로 보나 파급력으로 보나, ‘박시후’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흐름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그 포텐이 만개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미디어를 통해 공급되는 실사판 ‘야설’의 ‘폭풍성장’이자 ‘삼단변신’인 셈이다.

사실 자극적인 뉴스를 더욱 자극적으로 만드는 미디어의 취재 경쟁을 탓하는 건, 이제는 해묵은 비판이요, 현실을 모르는 백면서생의 투정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앞으로도 국민의 ‘알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모를 권리’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며, 미디어와 대중이 앞에서는 서로를 탓하고 뒤로는 결탁해 ‘야설’의 공모자가 되리라는 것도 기정사실이다. 손뼉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 야설에 빠진 사회를 구성하는 트라이앵글의 한 축은 ‘집단 관음증에 취한 대중’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집단 관음증’을 도발하는 미디어의 행태를 포기할 수 없다면, 차라리 모골이 송연하도록 생생하게 중계해줄 것을 요구하고 싶다. 그 시작이 가벼운 호기심이든 말든, 성범죄의 다양한 레퍼런스가 사회적으로 축적되면서, 그것을 다루고 이해하고 처리하는 여론도 일차원적인 단순성에서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방향으로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은태 교수의 성희롱 자체는 명백한 잘못이지만, 비난의 범위가 개인의 성적 취향에까지 확대돼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성범죄를 대하는 여론의 진화를 가늠해보게 하는 단초다. 부디 사회 고위층들의 성접대 의혹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박시후 스캔들’ 만큼만 ‘털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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